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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9)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만민공동회와 황국협회의 갈등 고조
등록날짜 [ 2021년10월21일 08시44분 ]

1898년 11월 10일 만민공동회는 이상재 등 독립협회 지도자 17명의 석방에  만족하지 않고 익명서를 조작한 조병식 등의 처벌을 결의했다.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종로에서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익명서를 조작한 조병식, 민종묵, 유기환, 이기동, 김정근 5흉(凶)의 처벌, ‘헌의 6조 실시’, 독립협회 복설 등을 요구했다.  

 

11월 15일에 만민공동회는 집회 장소를 경운궁 인화문(仁化門) 앞으로 옮겨 집회를 계속했다. 11월 16일에 법부대신 한규설이 조병식등 5흉을 잡아다 신문할 것을 상주(上奏)하니, 고종이 윤허하였다.  

출처 https://blog.naver.com/goaller/221523641158

이런 가운데 수구파들은 이기동·길영수·유기환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의 보부상들을 서울로 불러올렸다. 황국협회 세력을 이용하여 만민공동회 공격을 계획한 것이다. 

 

11월 20일에 수 천 명의 보부상들은 영수인 과천군수 길영수를 호위하면서 종로로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 날 경운궁 인화문 앞에는 만민공동회가 농성하고, 종로에서는 황국협회의 시위가 벌어져 위기가 고조되었다.

 

11월 21일 새벽에 길영수와 홍종우의 지휘 아래 2천여 명의 보부상들이 인화문 앞에서 농성 중인 만민공동회를 습격했다. 이때 시위대 대장 김명제와 경무사는 고종의 칙령을 비밀리에 받아 보부상들이 진격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연일 철야한 시민들은 물푸레나무 몽둥이로 무장한 보부상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항할 도리가 없었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보부상들의 기습이 승리로 끝나자, 궁중에서는 백반과 육탕을 보내어 보부상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보부상들의 승리는 잠깐이었다. 보부상들이 만민들을 습격했다는 소식이 서울 안에 퍼지자 격분한 시민들은 정동으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격분한 시민들에게 놀란 보부상들은 사태가 역전되었음을 느끼고 오후 2시쯤 병정들의 호위 아래 도망쳤다.

 

이후 시민들은 다시 종로에 모여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시민들은 황국협회를 격렬히 규탄하였다.

 

이 날 아침 일찍 나무를 팔러온 나무장수들이 만민공동회의 피습 소식을 듣고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이기동·조병식·민종묵·홍종우·길영수·유기환·윤용선·민영기 등의 가옥을 파괴했고, 보부상들의 도가인 신의상무소(信義商務所)도 부숴버렸다.

 

11월 22일, 이른 아침부터 더욱 많은 시민들이 종로에 모여들었다. 학생들도 휴학하여 수만 명의 대규모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다. 군인들도 일부 고급장교를 제외하고는 만민공동회를 지지했고, 경무청의 순검들까지도 만민공동회를 지지했다. 

 

이때 마포에 사는 한 시민이 만민공동회에 달려와서 마포에 둔을 치고 있는 보부상의 행패가 크다고 보고하였다. 분격한 일부 시민들은 빈손으로 마포로 달려갔다. 그런데 무장한 보부상들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신기료 장수(구두 수선공) 김덕구가 사망하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어 시민들이 패퇴했다.  

 

 이날 오후부터 고종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고종은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를 불러들여 해산을 종용했으나 이미 윤치호의 능력 밖이었다.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의 부활과 보부상들의 단체인 상무사의 폐지를 칙령으로 승낙했다.  

 

그런데 시위대와 순검들이 궁궐을 잘 호위하지 않고 만민공동회를 지지하자, 고종은 11월 22일 밤에 각국 공사·영사와 그 가족들을 궁궐로 불러서 자신을 호위토록 하였다.고종을 하룻밤 호위해 주고 나온 각국 외교관들은 11월 23일 아침에 회의를 열어 논의해 보았으나 통일된 안을 만들지 못했다. 일본 공사 대리는 병력을 동원하여 군중을 해산할 것을 제안했지만 영국 공사와 미국 공사는 반대했다.

 

 고종은 이날 내부대신서리와 경무사를 보내 독립협회 복설이 승인되었으니 만민공동회를 해산하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만민공동회는 이기동·조병식·민종묵·유기환·김정근·길영수·박유진·홍종우 등 8역(逆)의 처벌, 마포 강변에 둔취하고 있는 보부상들의 해산, 명망있는 정부 인사 임명의 3개 항을 해산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고종은 24일에 박정양을 의정부 참정, 민영환을 내부대신, 권재형을 농상공부대신, 이근호를 경무사, 윤치호를 한성부 판윤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보부상을 혁파하는 등 만민공동회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러자 만민공동회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일시 해산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부상들이 강력 반발했다. 이들은 각 지방에 통문을 돌려 비상 소집을 하였다.  한편 11월 25일까지 정부가 보부상의 해산 불응을 방조하고 조병식 등의 체포에 소극적이자 만민공동회는 11월 26일 오전 10시 종로에서 대규모 집회를 다시 개최했다.


이즈음 보부상들은 은밀히 수구파의 지원을 받으면서 마포에 둔취(屯聚)하고 있어 위기감이 감돌았다. 이러자 고종은 26일 오후에 만민공동회와 황국협회 대표를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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