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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8)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수구파의 익명서 조작과 만민공동회 철야 농성
등록날짜 [ 2021년10월20일 09시46분 ]

11월 4일 박정양 내각은 독립협회에 25명의 중추원 의관을 명단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독립협회는 11월 5일에 독립관에서 중추원 민선의관 선거를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그런데 11월 4일 밤에 ‘익명서(匿名書)’가 서울 광화문과 시내 곳곳에 게시되었다. ‘익명서’에는 ‘독립협회의 의회설립 목적은 황제를 몰아낸 후, 대통령 박정양 · 부통령 윤치호 · 내부대신 이상재 등을 내세워 공화제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는 의정부 찬정 조병식, 군부대신 서리 유기환, 법부협판 이기동 등이 꾸민 ‘익명서 조작’이었다.   


그런데 조병식 등은 고종에게 ‘익명서’를 보이면서, 독립협회가 황권을 폐하고 공화제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고 무고했다.

 

고종은 즉각 독립협회를 해산시킴과 동시에 독립협회 간부 20명의 체포령을 내렸다. 아울러 고종은 박정양 등을 파면시키는 동시에 조병식을 의정부 참정 겸 법부대신 임시서리로, 민종묵을 외부대신 겸 내부대신 임시서리로, 김정근을 경무사로 임명했다. 
 

조병식과 김정근은 11월 4일 밤중부터 11월 5일 새벽에 이르기까지 이상재(독립협회 부회장), 정교, 남궁억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했다. 다행히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와 최정덕, 안영수는 체포당하기 직전에 도피하였다.

 

아펜젤러 집으로 피신한 윤치호는 고종 황제에 대한 배신감과 러시아·일본의 배후세력 흉계를 일기에 적었다.

 
“오늘의 관보는 독립협회의 해산과 헌의 6조에 서명한 대신들을 해임시킨 칙령을 공포했다. 이것이 국왕이라니!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배신적인 어떤 비겁자라도 대한의 대황제보다 더 천박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친일 노예 유기환과 친러 노비 조병식의 수중에 있다. 러시아인들과 일본인들이 이 사건에 개입해서 의심할 여지 없이 모종의 알짜 이권을 위하여 그들의 노예를 지원하고 있다.

 

저주받을 왜놈들! 그들이 대한의 마지막 희망인 독립협회를 분쇄시키는 데 러시아인들을 돕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을 나는 참으로 희망한다” (윤치호 일기, 1898년 11월 5일)

한편 체포 소식을 들은 서울 시민들과 독립협회 회원들은 동요했다. 11월 5일 오전, 경무청 문 앞에는 삽시간에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하였고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다. 

 

시민들은 경무사에게 독립협회 지도자 체포를 항의하였다. 시민들은 ‘체포와 투옥을 자원’하기로 결의하고, 자기들도 체포해 달라고 다투어 요구하였다. 경무사는 당황하여 시민들은 체포대상자 명단에 없어 체포할 수 없으니 해산해 줄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군중들은 해산하지 않았고, 오후에는 그 수가 더욱 증가하였다. 종로의 시전상인들도 철시하여 합류했고, 시민들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철야농성을 하였다. 11월 6일에도 경무청 문 앞에서 만민공동회는 계속되었고, 시민들은 철야했다.

 

11월 7일 아침 6시경에 경무청은 이상재 등 17명을 고등재판소로 이송하였다. 이러자 시민들은 고등재판소 앞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외부대신 민종묵은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는 것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 각국 공사관을 순방하였다. 그런데 영국 총영사와 미국 공사가 군대 동원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날 오후 경무사가 해산을 종용하였지만 시민들은 물러가지 않았고, 고등재판소 문 앞에는 시민들이 더욱 많아졌다. 특히 각 학교 학생들은 학부(學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수 참가하였는데, 11세의 소학교 학생 장용남의 “피를 토하는 연설”이 화제였다.

 

만민공동회 참가자가 수만 명에 이르자, 고종은 크게 당황했다.11월 8일에 시민들은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고등재판소 문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면서 철야했다. 고종은 이날 중추원 의장 한규설을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장에 임명하였다.

 

11월 9일 오전 9시경 군부대신 서리 유기환이 친위대 2개 중대 병력을 투입해서 탄압을 획책했다가 실패하였다. 그런데 보초 선 군인들까지도 만민공동회에 동정을 표시했으며, 이날 밤 만민공동회를 포위하고 있던 200명의 군인들이 스스로 해산하여버렸다.

 

심지어 한성부 관리들까지도 수구파 정부의 모략을 개탄하고 만민공동회에 동정을 표시하였다. 이날 밤도 시민들은 추위와 찬비 속에서 동요하지 않고 철야하였다. 만민공동회 6일째인 11월 10일에 고종은 조병식·민종묵·유기환 등을 해임하였고, 구속자 17명 전원을 즉각 석방하였다.  

 
이로써 6일간의 투쟁으로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전원 석방되었다. 시민들은 감격에 넘쳐 서로 붙들고 울며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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