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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7)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독립협회 강제해산 (4)
등록날짜 [ 2021년10월19일 08시46분 ]

1898년 10월 29일 오후 2시에 1만명 넘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관민공동회가 열렸다. 민간에서는 독립협회뿐만 아니라 독립협회 계열의 모든 자매 단체들이 참석하였고, 수구파 행동대인 황국협회까지도 초청을 받고 참석하였다.

 

또한 의정부 참정 박정양, 법부대신 서정순, 농상공부대신 김명규, 탁지부대신서리 고영희, 중추원 의장 한규설, 원임 대신 김가진, 민영환·민영기·심상훈·이재순·정낙용, 한성판윤 이채연 등 정부 인사도 참석하였다.

 

먼저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가 인사를 하였고, 의정부 참정 박정양이 등단하여 개막연설을 하였다. 이어서 백정 출신 박성춘이 등단하여 개막연설을 하였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에 나라에 이롭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길은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차일(천막)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매우 공고합니다. 원컨대 관민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조(國祚)로 하여금 만만세를 누리게 합시다”

1895년부터 1904년까지 연보

이러자 군중들은 박성춘의 연설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성춘은 1895년에 곤당골 교회에서 무어로부터 세례를 받는 기독교 신자였다. 1892년에 한국에 온 새뮤얼 무어(1846∽1906 모삼열) 목사는 1893년에 지금의 조선호텔과 롯데호텔 중간쯤에 있었던 곤당골에다 장로교회를 열었다.


그는 고종의 어의인 에비슨과 함께 백정들에 대한 차별 철폐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런 무어 목사의 행동은 양반 신자와 선교사들로부터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0월 30일에 의정부 참정 박정양은 관민공동회에서 채택된 헌의 6조를 고종에게 보고했다.   

 

“(...) 신들이 생각건대 6조항은 바로 나라의 체면을 존중하고 재정을 정돈하며 법률을 공평하게 하고 규정을 따르는 문제로서 모두 응당 시행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삼가 아룁니다.

 

첫째, 외국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관리와 백성들이 동심협력하여 전제 황권(皇權)을 굳건히 한다. 둘째, 광산, 철도, 석탄, 산림 및 차관(借款), 차병(借兵)과 정부와  외국과의 조약은 각 부의 대신들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하여 서명하고 날인한 것이 아니면 시행할 수 없다.

 

셋째, 전국의 재정은 어떤 세금을 탁지부에서 관할하고, 다른 부(府)와 부(部) 및 사적인 회사에서 간섭할 수 없으며, 예산과 결산을 인민들에게 공포한다. 넷째, 이제부터 중대한 범죄에 관계되는 것은 특별히 공판(公辦)을 진행하되 피고에게 철저히 설명해서 마침내 피고가 자복한 후에 형을 시행한다.

 

다섯째, 칙임관은 대황제 폐하가 정부에 자문해서 과반수의 찬성에 따라 임명한다. 여섯째, 장정을 실천한다. ” 보고를 받은 고종은 "의정부로 하여금 조처하도록 하겠다."고 비답하였다. (고종실록 1898년 10월 30일)  


이어서 고종은 전제 황권을 견고케 한다는 ‘헌의 6조’에 만족하여, ‘조칙(詔勅) 5조’를 반포하여 관민공동회에 대한 지지의 뜻을 표시하였다.


 

‘조칙 5조’는 아래와 같다.
 

1. 간관(諫官)을 폐지한 후 언로가 막혀 상하가 힘쓸 것을 권하고 가다듬을 것을 깨우치는 뜻이 없게 된 만큼 중추원에서 빨리 장정을 개정하여 실시할 것이다.

 

1. 각 항 규칙은 일정한 것을 말한 것이 있는데, 각 회와 신문 역시 방한(防限)이 없을 수 없다. 회규(會規)는 의정부와 중추원에서 명하여 시의를 참작해서 제정하도록 하고, 신문 조례는 내부와 농상공부에서 각 국의 규례에 의거하여 제정하여 시행할 것이다.

 

1. 관찰사 이하 지방 관리와 지방 부대 장관들은 현직에 있건 교체되었건 간에 관청의 재물을 공짜로 가진 자가 있으면 장률(贓律)에 관한 법조문에 따라 시행하며,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은 자는 법률에 의거 징계 처결할 것이다.

 

1. 어사나 시찰원 등이 폐단을 빚어낸 것에 대해서는 본 고장의 백성들에게 내부와 법부에 가서 고소하도록 해서 사실을 조사하고 징계하여 죄를 다스릴 것이다.

1. 상공학교를 설립하여 백성들의 산업을 장려할 것이다." (고종실록 1898년 10월 30일)  

 

이렇게 고종은 중추원의 의회로의 개편을 사실상 승인하였다. 근대국가로 나가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11월 2일에 고종은 칙령 제36호, 〈중추원 관제 개정 건〉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

 

중추원의 직원은 의장 1인, 부의장 1인, 의관(議官) 50인이었다. 의관은 그 절반은 정부에서 나라에 공로가 있었던 사람을 회의에서 상주하여 추천하고, 또 절반은 독립협회 중에서 27세 이상 되는 사람이 정치, 법률, 학식에 통달한 자를 투표해서 선거하기로 했다. 

  
이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의회 개설만 남았다. 그런데 11월 4일에 변고(變故)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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