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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6)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독립협회 강제해산 (3)
등록날짜 [ 2021년10월18일 09시45분 ]

1898년 9월 26일에 독립협회는 법부대신 겸 중추원 의장 신기선에게 서한을 보내 의장과 서명한 의관의 사직을 요구하였다. 9월 27일에 신기선은 갑오개혁 이후 역적을 다루는 데 교수형만 적용시키니 역변(逆變)이 그치지 않아 노륙법을 부활시키지 않을 수 없고, 또 대신의 진퇴는 독립협회가 말할 바가 못된다고 답신했다.

 

10월 2일에 독립협회는 중추원 앞에서 민중대회를 열고 대표를 뽑아 신기선의 사직을 권고하였다. 신기선이 불응하자 독립협회는 신기선을 고등재판소에 고발하였다.

 

고발장을 접수한 고등재판소가 법부대신은 황제에게 상주한 후에야 구금할 수 있는데 법부대신 신기선 자신이 피고이므로 상주할 사람이 없어  이를 처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독립협회는 10월 6일에 고등재판소 앞에서 민중대회를 열었다. 

 

이 날 의정부 의정 심순택이 고종에게 법부대신 신기선을 면직(免職)하도록 아뢰었다. 하지만 고종은 신기선에게 1개월 감봉 조치만 내렸다. 10월 7일에 독립협회는 경운궁 인화문 앞에서 농성하면서 신기선등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종은 도리어 법부와 중추원을 두둔하였다. 이에 독립협회는 더욱 강경해졌다. 10월 10일에 독립협회의 윤치호 등은 경운궁 앞에서 농성을 계속하면서 신기선, 이재순 · 민영기 등 일곱 대신의 파면을 요구했다. 그런데 11일에 고종은 법부대신 신기선과 판사 이인우를 파면시키고 의정부 찬정 서정순을 법부대신으로 임명했다.  

 

이 날 농성 중인 의관(議官) 윤치호가 심순택 등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고, 독립협회는 경운궁 앞에서 농성을 계속했다. 종로 시전 상인들도 모두 철시하고 농성에 가담하였다. 농성 중인 윤치호는 상소하여 심순택, 신기선, 민영기 등 일곱 대신의 파면을 거듭 촉구했다. 

 

고종은 12일에 고종은 윤치호를 중하게 견책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이날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하여 농성 참가자는 1만 여명으로 늘어났다. 궁지에 몰린 고종은 의정부 찬정(贊政) 박정양을 의정부 의정 서리로, 조병호를 탁지부 대신으로, 민영환을 군부 대신으로 임용하였다. 결국 심순택, 신기선등 일곱 대신이 파면되고 노륙법과 연좌법 부활 기도도 사라졌다.

 

10월 12일 저녁에 독립협회 회원들과 시민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해산했다. 각국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에서 민중운동에 의해 개혁 정부가 수립된 사실에 놀랐다. 주한미국공사 알렌은 ‘하나의 평화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미국 국무부에 보고할 정도였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1 열강의 이권 침탈과 독립협회, 탐구당, 2003, p 353)
 


# 관민공동회 개최

10월 15일에 독립협회는 박정양 정부와 회담을 갖고 잡세 혁파와 중추원 관제 개정을 통한 의회 설립을 협의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이러자 고종은 곧 저지 활동을 시작하였다. 고종은 10월 20일에 토론은 정치문제 이외에만 허용하고, 집회는 한 장소에서만 하고 이차집회(離次集會: 장소를 옮겨서 집회를 여는 것)를 금지하는 조칙을 내렸다.

 

이러자 독립협회는 10월 22일부터 정해진 장소인 독립관이 아닌 경무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칙명을 위반했으므로 처벌을 받겠다는 뜻으로 철야 농성을 계속했다. 그런데 상황은 독립협회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0월 23일에 고종은 의정부 찬정 박정양을 참정(參政 총리)으로 승진시키고, 중추원 의장에 한규설, 부의장에 윤치호를 임명한 것이다.

 
아울러 고종은 중추원 관제를 중추원 의장· 부의장과 협의해서 개정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이에 독립협회는 이상재 등이 마련한 중추원 개정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 안에는 의관 50명 가운데 관선과 민선을 25명씩으로 하고 민선 25명은 독립협회가 회원 중에서 투표로 선출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어서 독립협회는 10월 28일에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부 대표는 집회 장소가 독립관이 아닌 종로라는 이유로 불참을 통고했다. 하지만 독립협회는 10월 28일 오후 1시부터 종로에서 4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윤치호는 (1) 황제와 황실에 대한 불경한 언행 (2) 외국에 대한 모독  (3) 회원간 및 전·현직 관료에 대한 비방 (4) 사회 개혁적 발언을 엄금한다는 4개 엄금사항을 제시했다. 이러자 정부 대표는 고종의 허락을 받고 다음 날인 29일의 관민공동회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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