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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만송당기 편)

소나무와 씀씀이가 서로 맞는 분이니 이를 즐겨 우러르고 사랑하며 한 없이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
등록날짜 [ 2021년11월22일 17시53분 ]

만송당의 기문(만송(萬松)당기)

‘渭川에 천무(畝)의 대나무와 安邑에 천 그루의 대추나무와 江陵에 천 그루의 귤은 그 부가 천호의 제후와 맞먹는다,’하여 이로움을 꾀하는 사람이 많아 심어서 후생의 자료로 삼고 있고, 成都에는 해당화가 잘되고 洛陽에는 牡丹이 잘되고 廣陵에는 芍藥이 잘 되어 일 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심어서 눈을 즐겁게 하는 자료로 삼고 있다.


그런데 소나무는 그 열매가 후생을 넉넉히 할 수도 없는 것이요, 그 꽃이 눈을 즐겁게 해주지도 못하는 것인데 이따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해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의 뒤에 말라짐을 안다] 하셨고, 장생(莊生)이 擧主가 되었다면 소나무가 뭇나무 가운데에서 으뜸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도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도 분명하다.


추성(楸城)의 李 侯는 龜城府使를 지냈는데 병으로 고향에 돌아와 선조묘소와 수 십 보 떨어진 곳에 先大夫가 살았던 산을 인하여 집 10여 칸을 얽어 말년을 보낼 계획을 하고 또 別舍를 서편에 지어 손님을 모실 곳으로 삼았는데 집둘레에 소나무 만 여 그루를 심어 놓았다.


바라보면 울창하고 들어가 보면 창연하여 굽으러진 것은 용과 같고 웅크린 것은 범과 같고, 연달아 서 있는 것은 冠쓰고 칼 찬 大臣과 같고, 쫑긋하게 오른 것은 장보(章甫 : 冠名)쓴 선비 같고, 우거진 모습은 뭉친 구름 같고, 뻗어있는 것은 해 가리는 우산과도 같다.


李 侯가 그 뿌리들을 깨끗이 쓸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읊조리며 기꺼이 이곳서 일생을 마칠 작정이다. 드디어 그 堂에 편액을 붙이기를 萬松이라 하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 기문을 칭하니 나는 말한다.


李 侯를 초목에 비유한다면 소나무와 씀씀이가 서로 맞는 분이니 이를 즐겨 우러르고 사랑하며 한 없이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면 겸손한 하나의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임진년(壬辰年 : 1592년) 왜적의 변란으로 맞아 임금의 수레가 피난을 하고 수령들이 막아낸 사람이 없음을 분하게 여겨 붓을 내던지고 나라 일에 나서서 화살과 돌을 마다않고 참여해 수많은 죽음 가운데 한 목숨 살아남을 얻어 공명을 세웠고, 서북의 鎭將의 중책을 지내니 적국이 감히 꾀하지 못했고 여러 장수들도 그(이인경(李寅卿))의 의로움에 감복하였으니, 이는 이른바‘해가 추워진 뒤에 알 수 있는 뒤에 마른 나무’가 아니겠는가.


불행히도 병을 얻어 어인(印)을 풀어 놓고 돌아와서 약을 심으며 스스로 수양하여 드디어 장상 포박(長桑 抱朴, 모두 옛 神醫)의 묘법을 얻어가지고 자기의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남을 생각하여 다스려주었다. 이리하여 팔다리를 못 쓰는 사람, 피부가 헐어진 병에 걸리거나 하면서도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으니 廉頗, 이목(李牧 : 戰國時 名將)과 화타(和陀), 진완(秦緩 : 모두 神醫)이 합하여 한 몸이 된 셈이다.


진실하고 겸손하여 마치 옷도 이기지 못 할 듯 하면서도 그 속에 몸을 잊고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려는 마음을 살펴본다면 굳세어 뽑히지 않은 바가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하늘에게 명을 받은 것 중에 홀로 바른 것이 아니겠는가. 마땅히 소나무를 사랑하고 소나무를 심어서 자기의 뜻을 붙일 만 하도다.


비록 그러나 지금 보듯이 국경을 지킬만한 사람이 없어 장차 戎狄의 교활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어 聖上이 볼기 살을 만지며 바야흐로 장수로 신하됨을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생각건대 李 侯는 마땅히 무기를 잡고 국경 땅을 지켜 임금의 보살피어 사랑함에 보답을 해야지만 그루 소나무(萬松) 사이에서 기거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내 비록 候의 堂에 올라가 이른바 萬松이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侯의 나라 일에 마음을 다함을 아름답게 여겨 이렇게 쓰노라.


 

<만송당기문과 수은선생의 생각>

1. “여러 장수들도 그(이인경(李寅卿))의 의로움에 감복하였으니, 이는 이른바‘해가 추워진 뒤에 알 수 있는 뒤에 마른 나무’가 아니겠는가.‘와 서두에서 가져와 인용한 공자의 말씀인 ”[해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의 뒤에 말라짐을 안다]“의 구절은 선생의 글의 수려함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수은선생은 옛 선인들이 살아온 궤적(軌跡)을 항상 본받고 삶의 으뜸으로 알고 수행하고 학문에 정진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선인들과 같이 삶을 도모하고 그렇게 살아감을 최고의 경지로 알고 살기를 원했다. 그게 유교가 나아가는 가장 최고봉인 도학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2.  중국고서를 가져와 일치시키는 어법의 활용

만송당의 정자를 수은은 가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가보지도 않은 곳의 기문을 받으려고 수은집에 3건이나 발견되는걸 보면 당시 기문이나 제문을 지어달라는 사람들로 운제는 인파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고 본다. 그러한 예상은 아래 글을 읽어 보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내 비록 候의 堂에 올라가 이른바 萬松이란 것을 보지는 못 했지만 侯의 나라 일에 마음을 다함을 아름답게 여겨 이렇게 쓰노라.’ 이 부분의 표현은 광양수월정기에도 똑같고 남원의 ‘청몽당기’에서도 수은선생은 거의 똑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걸 훔쳐 볼 수 있다.


수은이 직접 가보지는 않았으나 기문(記文)을 청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세히 듣거나 그의 인품과 청하는 이의 문적(文籍)을 통해 익히 꽤 뚫어 알고 있거나 이미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관찰한 다음에 거기에 걸맞게 기문을 지어 줬던 것이다.



<편집자 주>

(이인경(李寅卿) : 만송당 호는 만송당(萬松堂). 김덕령(金德齡)의 처남으로서, 담력과 지략이 있어 김덕령과 더불어 의기가 투합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분강개하여 백면서생으로서 김덕령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진해·고성 지방을 방어하여 왜군의 호남 지방 진출을 막았다. 이에 당시의 재상들이 그 충의에 감탄하여 무과에 응시할 것을 권하여, 무과에 합격, 비변사낭청을 거쳐 안악·숙천·정주·벽동 등지의 첨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1607년 경원부사가 되었고, 1624년(인조 2)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킬 때 방어사로서 황해도에 있었다. 이 때 지원병력이 이르기도 전에 적병이 이르자 선봉에서 수백 명을 거느리고 용전분투하여 적병을 물리쳤다. 1627년 정묘호란에서도 북도방어사가 되어 철령을 지키며 적을 크게 물리쳤다. 그러나 김덕령이 모함으로 화를 입은 뒤 눈뜬 장님으로 칭탁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인경 [李寅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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