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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칼럼> 한 인물(人物)에 대한 현창(顯彰)의 고뇌(苦惱)

무(武)의 정치, 문(文)의 정치로 바꾼 강항...근대 일본의 '명치 유신' 기초
등록날짜 [ 2022년11월13일 17시06분 ]
 거대한 터널을 막 빠져나와 이제 여유를 갖고 마음껏 즐기면서 목적지에 가고자하는데 근래에 와서 자주 묻는다.

“왜, 수은강항을 현창(顯彰)하려하는가?”
같은 성씨(姓氏)? 조상(祖上)? 그래서 그러냐고!!
 
그 답은 문어체적으로 "일본유교의 비조"라서 그렇다.가 아니라 "일본유교의 비조"가 수은강항선생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묻어버리려는 일본의 일부학자와 그에 동조하는 세력 때문에 그렇게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자함이라고 주장하는바가 크게 작용한다.

 
# 광양수월정의 역사왜곡
국내의 한 실례(實例)를 들어 비근한 설명을 이어가고자 한다.
 
2014년 어느 화창한 가을날 광양 수월정을 찾았는데 “수월정기”는 송강 정철이 지었고 “수월정 30영”은 수은 강항이 지었다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음에 일순간 경직되고 가슴 가득히 사정없이 파랑이 일었다.
 
전남 광양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온 대부분의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고 인터넷을 조금이라도 다루고 그닥 SNS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카톡이나 소셜 네트워크에 사진촬영을 한껏 사진빨을 내세우고 멋을 부리며 배경을 벗 삼아 오로지 게재하는데 열중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당연스럽게 안내판에 쓰여진 대로 “수월정기”는 송강 정철이 지었고 “수월정 30영”은 수은 강항이 지었다라고 그대로 베끼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식의 카페나 블로그, 페이스북 등등과 인터넷 검색사를 조금만 들어가 키워드로 검색해 살펴보면 자욱하게 안개 깔리듯 역사왜곡의 현장은 넘쳐나고 있다. 이처럼 단순한 역사왜곡이란 게 아주 쉽게 도처에서 범해지고 자행된다.


그렇다면 역사왜곡이란 뭣일까?
쉽게 충격적으로 말하자면 글의 도용(盜用) 즉 도적질이고 저작권의 침해이다. "일본유교의 비조"가 수은강항인데 이미 타계한 퇴계가 당 시대에 부활해 일본에 유교를 전파한 것이라고 우기는 것과 진배없다.
 
그것도 말이 되는 것은 스승이 한낱 포로인 것보다 위대한 대학자라는 자부심을 갖고자 하는 아주 우매한 민족성 때문에 더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라!! 
 
스승이 여느 전통시장에서 생계수단으로 노점상을 한다고 해 스승의 네임텍을 지울 수 있는 일인가 말이다.

우리는 유학사상이 아니더라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마음으로 오히려 그 스승을 찾아가 더 도움을 주는 여러 형국이 야기되는 은근의 민족성이 있다. 이게 너무도 당연히 이뤄지는 진정한 사제지간의 연인 것이다.
 
다시 광양수월정으로 되돌아 가 남아 있는 말을 이어간다.
 
당시 2015년 광양수월정 역사왜곡을 그냥 넘어갈 호남의 유림들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2015년 10월 28일 가을에 광양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300여명의 호남유림들이 모여 학술세미나를 통해 바로잡았다. 
 
당시 김덕진 발제자(광주교대 교수)는 당시 역사바로 세우기의 현장에서 발제자의 책임의식을 갖고 순천대학교 학술지에 까지 논문을 게재해 발표했다.
 
그렇다면 광양수월정의 역사왜곡이 곧 바로 말끔하게 해결되었을까?!
 
결코 그렇게 만만하게 역사왜곡의 수정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당시 광양시청에서는 담당 학예사가 시장의 눈치를 보고 단체장은 표를 의식해야하기 때문에 안내판을 수정하되 병기(倂記)를 해놓겠다는 공문으로 답이 왔고 ““수월정기”는 수은 강항과 송강 정철이 지었고 “수월정 30영”은 그대로 수은 강항이 지었다.“고 억지 춘향식으로 광양수월정 안내문은 오점을 남기며 지금 그 자리에 나란히 병기(倂記)가 되어있다.
 
 
# 올바른 현창(顯彰)의 방법
그렇다면 이번에는 현창(顯彰)의 방법에 대해 논(論)해 본다.
  <출처>https://www.koreanart21.com/review/antiques/view?id=1007스마트k
혹자는 "일본유교의 비조"가 수은강항이라고 맨날 주장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실질적으로 강항선생이 귀국해 우리나라에 뭘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강항의 선비정신이 중요하며 강항의 실천적 삶의 철학과 강항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백번이고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실을 묻어버리려는 일본의 일부학자와 그에 동조하는 세력을 막지 않고는 안 된다.
 
그게 목표가 되고 그 목표의식을 갖고 등대를 향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항해사처럼 목표가 뚜렷이 설정되어야만 가능하다. 국내의 유수대학에 퇴계연구소가 존재하고 그 연구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음은 무슨 이유때문인가를 주목해 봐야만 하는 것이다.



# 일본 양명학의 시조라는 나카에 도주(中江藤樹, なかえ とうじゅ, 1608년 4월 21일 ~ 1648년 10월 11일)

평소 등나무(藤樹) 아래에서 강학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를 ‘도주 선생’이라 불렀다. 청년 시절에 도주는 하야시 라잔의 문하에서 정주학을 배웠으며, 33세가 되던 해에 우연히 《왕용계어록(王龍溪語錄)》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중략>

“성인의 일관된 학문은 태허(太虛)를 체(體)로 삼으니, 이단(異端)과 외도(外道)가 모두 내 안에 있다. 내가 어찌 말이 같다고 꺼리겠는가”(〈藤樹先生行狀〉) “치지격물(致知格物)의 학문이 비록 새롭다고 하지만 해가 거듭하여도 참뜻을 밝힐 수 없구나. 하늘이 도와서 밝은 세계로 돌아와 태평함에 이르렀으니, 오늘 아침 내 마음에는 새 봄이 찾아 온 듯하구나.”(〈藤樹先生遺稿〉)(출처 위키백과)
 
일본 사회는 배신의 역사의 연속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일본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역사이든 조금만 들여다봐도 배신의 역사는 아주 쉽게 발견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변화를 좋아해서인지 조금만 특이하면 아주 소중한 물건이 되고 명소가 되고 명인이 되고 그러한 사회가 열리고 그게 문화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개조'니 '시조'니 '비조'라는 말을 아주 쉽게 호칭한다. 특이한건 2018년에 무라카미 쓰네오 회장도 자신을 지칭할 때 "지성인 무라카미 쓰네오"라고 봉투에 적어 깜짝놀라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의 민족성의 영향인지 그네들의 기록물을 보면 1597년 정유재란 당시 강항선생을 붙잡아갔던 신칠량의 주군인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등당고호)는 평상시에도 "배신"을 자랑삼아 자주 말했다. 

,“진정한 남아 대장부라면 주군을 십 수 번 배반해 봐야한다.”고 말이다. 이게 일본인의 기질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흑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이미 윗글에서 에이메현 오즈시의 우상 나카에 도쥬가 누구인가를 밝혀졌지만 거듭 살펴보고자한다. 나카에 도쥬는 젊은 시절에 하야시 라잔에게 수학했던 제자이다. 하야시 라잔은 순수좌(등원성와)의 제자이고 나중에 스승인 등원성와 행장(오사카 박물관 소장)을 쓴 사람이다.

하야시 라잔은 이 행장을 통해서 순수좌의 아호(雅號)와 사제지간의 인연을 잔잔히 기술하고 있는데 거기에 강항선생이 거명되며 『강항휘초』 발문에 대한 기록도 놓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400여년이 지난 2018년 우리나라에 다녀 간 수은강항선생 일본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무라카미 쓰네오 회장마저도 오즈시에서는 양명학이 주류를 이르고 있으며 양명학의 시조인 나카에 도쥬를 더 현창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명확하게 답이 나왔을 게다.
 
우리가 "일본유교의 비조" 수은강항이라고 논리정연하게 주장하고 그 부분을 현창해 가면서 무(武)의 정치를 문(文)의 정치로 바꾼 강항선생이야말로 "일본유교의 비조" 이기에 그들이 훗날 근대일본의 출발이 된 명치유신이 가능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 자신들에게 칼의 노래를 비유적으로 거명해 강조한다.
 
칼로 왜적을 물리친 영웅이 이순신장군이라면, 글과 학문으로 당당하게 맞 서 승리해 귀국한 영웅이 수은강항선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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