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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 일본에서 만난 강항 선생 – 3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강항 선생, 탈출하다가 붙잡히다.
등록날짜 [ 2023년02월06일 09시25분 ]
 출석사를 방문하고 나서 오즈성을 찾았다. 오즈성은 오즈 시민회관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이 성은 도도 다카도라가 거주한 성이다. 
사진 1 오즈시 안내도  
 
사진 2 오즈성     
 
1598년에 강항은 간혹 오즈성에 올랐다. 그는 성안에 사람 없는 틈을 타서 서쪽을 우러러 실컷 분한마음을 눈물로 훔치고 내려왔다. 그러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서다. 강항은 오언 율시 한 수를 지었다.
 
이 걸음이 일찍이 꿈속에 보여       玆行曾入夢
창해의 한 하늘 동쪽이었네          滄海一天東
성읍은 이 봉우리 위에 터를 잡았고  城邑層峯山
민초들은 물 가운데 집을 두었네     民居亂水中

입으로는 부처를 늘 되내이면서     恒言稱佛戒
날마다 싸울 채비만 차리네.          常日展軍容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 땅이 아니어라  信美非吾土
남산은 몇 겹이나 가로막혔나.        南山隔幾重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해행총서, 간양록, 섭난사적)
 
이제 강항 선생이 탈출하다 붙잡혔다는 우와지마시(宇和島市)로 향한다. 우와지마시는 야와타하마시를 지나서 한참 가야 한다. 
사진 3 에이메현 지도 
 
마침내 약사곡(藥師谷)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바로 강항이 폭포에서 목욕하고 있는 일본 승려를 만난 곳이다.  
 
사진 4 약사곡 계곡 안내판 
 
먼저 강항의 『간양록』 ‘섭난사적’을 읽어보자.  
 
“강항은 서울에 살다가 잡혀온 사람과 친하여 같이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5월 25일에 밤을 타서 서쪽으로 나와 밤에 80리를 걷고 나니, 두 발에 피가 흘렀다. 낮에는 대밭 속에 숨어 있다가 이튿날 밤에 판도현(板島縣 지금의 우와지마시)을 지나가면서, 강항은 성문에다 큰 글씨를 써서 붙였다. 
 
왜인들이 귀신을 숭상하여 항상 해와 달에 제사를 올리고, 자나 깨나 노상 염불을 외우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하늘의 명과 부처의 말을 빌려서 경고를 하면,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서 였다. 
 
강항 일행은 판도에서 서쪽으로 10리쯤 가서 대숲에 쉬어 있자니, 나이가 60여 세쯤 보이는 웬 늙은 중이 폭포에 몸을 씻고 밥을 지어 해에게 제사 지내고 바위 위에서 졸고 있었다. 그래서 통역을 보내 서쪽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하자, 그 승려는 배로 풍후(豐後 지금의 규슈 오이타현 大分県)까지 배로 건너 주겠다고 쾌히 승낙하였다. 
 
 우리들은 몹시 기뻐하며 중(승려)을 따라 내려왔다. 통역이 앞을 서고 중(승려)이 다음에 서고 우리들은 조금 떨어져 따랐다. 
 
그런데 열 걸음도 못 가서 한 왜적이 병졸 두 사람을 데리고 불쑥 나타났다. 우리들을 보더니 “탈주하는 조선 사람들이다”하며 칼로 치려했다. 우리들은 목을 내밀고 칼날을 받으려고 하자, 왜적은 우리들을 판도시 성문 밖으로 끌고 갔다. 거기엔 긴 나무 십여 개에 죽은 사람의 머리가 많이 달려 있었다.  
 
왜적은 우리들을 그 아래에 앉히고 목을 배려했다. 그러자 한 왜적이  정지시키고 우리들을 성안으로 보냈다. 성문을 지날 때 한 왜인이 돌연히 와서 끌고 들어갔는데, 바로 우리를 영광에서 사로잡은 신칠랑(信七郞)이라는 자였다. 곧 술과 밥을 먹여 주고 3일을 머물게 하고는 오즈로 압송했다. 
사진 5  약사곡 계곡 
 
이후 강항은 꼼짝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하루는 오즈성 밑의 승사(僧舍)를 찾았는데 어느 중(승려)이 지극한 예로 대하여 주며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어진이를 처음 뵈니 꿈이런가 참이런가   初逢賢聖夢耶眞
나그네 신세 된 그대 애석하네         堪惜高人客裏身
달을 보나 꽃을 보나 한이 어찌 없으랴   見月見花應有恨
전쟁으로 끝없는 이 나라이기에          扶桑國盡戰爭塵

강항은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

귀 밑에 서리 날리니                     雪髮霜眉創見眞
옛 성현 모습이라.                        胡雛康老是前身
한 많은 세상에 시 조차 마르도다.         淸詩寫盡泥中恨
어즈버 칼 찬 놈에게 몇 겹이나 짓밟혔나   帶劍諸奴隔幾塵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해행총서, 간양록, 섭난사적)
 
이윽고 약사계곡 휴게소에서 말차(末茶)를 마셨다. 그런데 여기엔 우와지마 성 그림이 붙어 있다.  
사진 6 우와지마 성 그림  
 
이어서 우와지마 항구에서 규슈 오이타현 벳부로 가는 밤배를 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항로가 바로 강항이 탈출하려 한 뱃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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