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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강항로드(ROAD) 일본문화 탐방기(2회차)

2024년 강항로드(ROAD)탐방단...강항 정신의 향기 (2024. 09. 24 – 09. 28)4박 5일 여정
등록날짜 [ 2024년11월27일 06시24분 ]
간사이 공항에서
 간사이공항은 여객 및 물동량 처리 규모에서 인천공항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두 항공사의 운명이 갈린 원인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초기 건설 비용과 공항 유지 관리비의 차이가 원인이다. 

 간사이공항은 수심 20m의 바다를 메워 공사를 한 반면, 인천공항은 수심 1-2m를 메우는 비교적 손쉬운 공사였다. 구체적으로 파헤치지 않더라도 수심의 차이에서 오는 건설비 문제는 쉽게 이해가 되는 문제다. 
 
 간사이 공항은 깊은 바다를 매립해 공항을 건설했고, 또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보니 지반 침하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유지 보수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테니, 인천공항과 경쟁이 되지 않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선진 문물 수입 창구 나라현
 일본 나라현은 우리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였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수시로 그곳을 오가며 한자, 유교, 불교 등 선진 문물을 전해주었다.  나라현은 특히 백제와 인연이 깊다. 한 마디로 백제는 나라의 ‘문화 스승’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백제가 멸하자 유민 다수가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에 정착했다.

그들은 생활용품 제조술, 저수지 축조 기술 등을 가르쳤다. 따라서 나라시대 문화는 백제 문화가 원조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백제란 지명, 사찰 백제사(百濟寺) 유적, 고분 벽화 등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충남 부여군과 일본 나라현은 일찍부터 자매결연을 맺어 인적, 물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부여에서 개최하는 백제문화제와 대백제전 같은 행사에 자매도시에서 집단으로 참여해 백제 문화의 진수를 맛보기도 한다. 또한 부여읍 소재 초등학교와 나라 초등학교가 매년 학생 대표와 교사가 번갈아 방문하며 우정의 끈을 이어간다. 
 
 올해도 여름방학을 맞아 일본 나라현 아스카무라 성덕중학교 교류단이 부여를 방문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학교장을 비롯한 교사 3명과 학생 9명으로 구성된 성덕중학교 방문단은 정림사지 등 유적지와 국립부여박물관, 부여중학교 등을 방문했다. 
 
 특히 부여중학교에서는 양국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학교와 고장을 소개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이처럼 부여와 나라가 교류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양국 청소년 세대들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보다 일찍 내산서원을 출입했던 집안 형 심강 윤홍식 선생은 부여군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양 지역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부여군 일본 방문단 인솔 책임자로, 나라현 부여 방문단 안내 책임자로 크게 활약하였던 것. 
 
 심강은 수은 강항 선생 일본연구회 무라카미 쓰네오 회장과는 오랜 인연으로 교분을 이어왔다. 일본연구회에서 ‘홍유 강항 현창비’를 건립할 때,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강과  같은 동토 후손으로 선조의 아름다운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정성을 다하기로 약속했으나, 코로나의 폐해를 피해가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하셨다. 이 자리를 빌어 심강 선생의 명복을 빈다.
 
 이번 여행에서 나라는 답사할 곳이 많았다. 동대사, 후시미성터, 귀무덤, 도시샤대학, 상국사 등을 탐구하기로 되어있어 기대되는 곳이다. 오즈성에서 일 년 가까이 지낸 수은은 교토로 옮겨 여기 상국사와 인연을 맺은 곳이기 설레는 지역이기도 하다. 
 
  밥상 앞에서
  일본 여행 첫날 점심상 / 우리네로 치면 한정식.
  쌀밥에 장아찌류 두어 가지 / 튀김에 면류인 밥상.
  튀김은 간장 찍어 먹고 / 면은 후루룩, 밥에  반찬이 모자라
 
  먄밥 몇 숟가락에 드는 생각 / 우리네 밥상은 푸짐한데 / 
 가지 수며, 양이며, 넘쳐나는데 / 우리밥상에선 인심난단 우리네 밥상!
 이곳이 일본이라는 생각이 밥상에서 찾을줄이야!!
 
 동대사, 그 웅장함에 놀라다
 첫날 첫 번째 답사는 일본 호국 불교의 상징으로, 세계 최대 목조건물과 청동불상이 빛나는 동대사다. 동대사 가는 길은 사슴과 함께 하였다. 천여 마리의 사슴이 자유롭게 거니는 길거리 풍경이 퍽 이채로웠다. 
 
 우리나라에서 사슴을 접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동물원이나 사슴농장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사슴농장에서 사슴을 사육하는 건 녹용을 채취해 판매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여기 사슴들은 사람을 따라오게 훈련시켰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마치 오랜 세월 방목해 온 관계를 잊고 자연스럽게 인간과 친구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길성원에 서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동대사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드넓은 대지, 웅장한 건축물,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로 해서 대단한 곳임을 실감케 했다. 동대사 남대문, 2층 전각이 나를 압도했다.

들어가는 문이 이처럼 거대하니 대불전이야 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웅장했다.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임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 종묘 정전이 한옥으로 면적은 훨씬 넓다 하겠으나 웅장함에선 동대사가 앞섬을 알 수 있었다. 
 
 세계 최대 청동불상인 비로자나불이 대불전 중앙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널리 비추는 부처’다. 불국정토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일본 사람들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왜 우리 한반도를 그리도 침탈했는지 모르겠다.

삼국시대부터 우매한 민족을 정성껏 보듬어 깨우쳐놓았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태를 보였으니 말이다.  동대사는 정원이다. 여러 건축물 말고도 잔디와 각종 수목이 잘 가꾸어져 있는 아름다운 쉼터다. 더구나 접근성이 좋은 시내 중심부에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 산책을 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동대사 관광객 정말 많다. 우리 경복궁과 비교해 보았다. 사실 경복궁도 관광객으로 붐빈다. 특히 한복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 동대사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숫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그 존재 가치가 돋보이는 동대사를 보며 많은 걸 느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교수 연구서다.  일본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축소와 간결함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의 성향을 분석한 책이다.  건축, 예술, 의식주 등에서 축소되고 간결하게 표현되는 경향이다. 우리는 동대사 대불전과 비로자나불을 보며, 일본인들의 축소와 간결함 문화를 생각해 본다.
  
 반면에 동대사가, 이토록 큰 걸 보니 아마도 백제 장인 작품은 아닐는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러면 그렇지 가이더가 정답을 말한다.  백제 스님 양변(로멘)이 세운 사찰이란다. 
 
스쳐 지난 후시미성 터
 동대사 답사를 끝내고 귀무덤을 향하다 잠시 후시미성 터 입구에 멈췄다. ‘명치천황릉’이란 표지석 앞에서 잠시 주변을 살피는 여유를 가졌다. 후시미성은 교토시 후시미구에 있던 성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거처로 삼기 위해 쌓은 성이란다. 후시미성은 많은 변화를 겪으며 그 터만 남아있지만, 명치천황릉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단다. 
 
 임진왜란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노후를 편히 보내려 1592년 이 성을 쌓았지만, 1596년 지진으로 성이 허물어지자 가까이에 새로운 성을 쌓았으나 1598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우리 쪽 입장에서 볼 때 그는 60평생 온갖 못된 짓만 하다 갔다.

조선 왕에게 자신을 찾아 알현과 함께 조공을 바치란 허무맹랑한 요구를 한 자이다.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응할 우리가 아니잖은가? 한발 더 나아가 명을 치는데 적극 협조하라는 헛소리를 명분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니, 분통이 터지고도 터질 일이었다. 
 
 수은 강항은 후시미성 가까이에 거처하며, 후지하라 세이카 등을 가르쳤다. 강항은 히데요시 사후 어느 날 일본인 승려를 따라 몰래 후시미성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간양록’에 적혀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섯 걸음마다 절이 하나씩 있고 열 걸음마다 누각이 하나씩 있는데, 이리저리 이어져 있어 어느 길을 따라 나가야 할지를 모를 정도다. 귀신이 재목을 가져다 돕는다 해도 1, 2 년 정도로는 공사를 마치지 못할 텐데 이걸 1년이 못 되어 다 지었다니, 왜놈들이 얼마나 제 백성을 혹사시켰는지 왜인들이 얼마나 힘을 쏟아 일했을지를 족히 상상하고도 남았다."
 
 여기서 수은 강항의 또 다른 마음 즉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적국사람이라 하더라도 힘없는 민초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며, 그들을 혹사시킨 권력자들을 질타하는 모습에서 따스함과 꼿꼿함을 두루 갖췄다는 생각을 했다. 
 
 오즈에서 옮겨온 강항은 후시미성 인근 창고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여기서도 글씨를 팔아 얻은 돈으로 탈출을 시도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애국심이요 고국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먼 길을 걸어 상국사 수좌로 있는 후지하라 세이카에게 신유학을 전했다. 이 또한 내 나라 남의 나라를 가리지 않고 배움에 뜻이 있는 자는 모두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지성성, 배려심이다. 
 
 슬픈 역사 간직한 이비총
 전쟁에도 도(道)가 있는 법이다.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은 쏘지 않는다. 항복을 청해오면 받아드린다. 부상 당한 군인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보살피며 치료한다. 그런데 왜국은 7년 전쟁 시 전쟁의 논공행상을 증명하려 죽은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귀와 코를 베어 갔다.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이 세상천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기야 청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 부녀자를 전리품으로 자기들 나라에 끌고 갔다. 소위 ‘환향녀’란 딱지 붙은 여인들의 눈물이 이를 말해준다. 귀 무덤 앞에서 한국의 이름 없는 소시민이 분개해 보아야 무슨 효과가 있으랴만, 국력은 반드시 강해야 함을 느끼고 또 느꼈다. 국제 정세는 정의니 인도(人道)니 평화니 하는 건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단 걸 알아야 한다.

철저한 힘의 논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지금도 우쿠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에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싸우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이비총(일본에서는 하야시 라잔이 이비총이라는 말이 너무 잔인하게 들리니까 귀무덤이라고 순화시켜 전해옴) 이 있기까지 뜻있는 한국인의 노력과 정성이 지대했다는 걸 바로 알아야 한다. 일본에선 자신들의 만행이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되니 어떻게 하든지 이비총을 역사에서 지우려 했을 것이다.

따라서 교토 이비총(귀무덤)은 눈엣가시였을 테고,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형식만 유지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애국심과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 국민, 일찌감치 일본의 속내를 감지해 싸워왔다. 공개적으로 여론에 불을 지펴 일본의 만행을 저지했다. 이비총(귀 무덤) 앞의 한글 안내판을 통해 슬픈 역사를 되새겨보자. 
 
  사적 호코지(7호) 절 석축 및 석탑(1969년 4월 12일 지정)
  이비총 ‘귀 무덤(코무덤)’   이 무덤은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대륙 진출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1592-1598)’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戰功)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에 조선 국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되어, 공양 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는 ‘귀 무덤(코무덤)’ 유래이다. 
 
  ‘귀 무덤(코무덤)’은 사적 오도이 토성 등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유적 중의 하나이며, 무덤 위에 세워진 오륜 석탑은 1643년에 그려진 그림지도에도 이미 그 모습이 그려져 있어 무덤이 축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건되었다고 추정된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비총 즉 ‘귀 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 써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오호, 통제라!!, 슬픈 역사의 현장이여!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은, 당신의 한(恨)을 말끔히 풀어드리겠습니다.

다음호에 이어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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