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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식의 2024년 강항로드(ROAD) 일본문화 탐방기(4회차)

2024년 강항로드(ROAD)탐방단...강항 정신의 향기 (2024. 09. 24 – 09. 28)주히로시마 대한민국 총영사관 방문
등록날짜 [ 2024년12월01일 13시11분 ]
 신사이바시 도톰보리를 걷다!
 강항로드 탐방 이틀째인 25일 오후다. 일행은 오사카 남부에 위치한 번화가 도톰보리를 걸었다. 도톰보리는 밤거리 문화의 중심지로 오락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멀었는데도 거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의 명동보다도 더 인파가 몰리는 느낌이다. 
 
 도톰보리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해 일본인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되는 장소란다. 
 
 ‘도쿄 사람들은 구두에 재산을 탕진하고, 교토 사람들은 옷 사 입는 데 재산을 탕진하고, 오사카 사람들은 음식 먹는 데 재산을 탕진한다,’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단다. 
 
 거리를 얼마간 걸으니 반듯한 운하가 나타났다. 맑은 물이 가득 흐른다. 소형 선박이 떠 다닌다. 잘 만들고 잘 관리하는 운하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들었을 당시엔 수로를 이용한 교통수단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상교통이 발달한 현대에는 수상 교통로의 기능은 사라진 게 분명하다. 그러면 남는 건 하나다. 즉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배를 타고 운하를 유람하고, 운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청계천은 어떤가? 물론 청계천은 개울이지 운하는 아니다. 그러나 오사카 운하보다 우리 청계천이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오사카 운하는 자연미가 전혀 안 보인다. 자를 대고 그어 놓은 듯 일자로 쭉 뻗었다. 물론 운하로 활용할 땐 짧은 거리가 유용하기 옳은 설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운하의 기능이 사라진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효용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본다. 
 
 우리 청계천을 보자.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헤엄치며, 새들이 날아와 먹이 사냥을 하고, 갯버들과 갈대가 춤을 추는 곳이잖은가. 많은 사람 찾아 걷는 산책 코스요, 흐르는 물에 피로를 씻는 힐링 장소며, 시심에 젖는 낭만의 장소잖은가. 
 
 예전에 제주공항에서 회전초밥을 경험한 바 있다. 여기 오사카가 바로 회전초밥의 본류라고 한다. 탐방단 일행은 복잡한 거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며, 우리네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란 걸 느꼈다. 직장에 나가 일하고, 집에 들어가 쉬며,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을 노래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걸!! 
 
 고베시 대재앙과 메리켄파크
  1995년 1월 17일 새벽
  평화롭던 고베시 중심가에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졌다. 
  120km가 갈라지고
  4만여 명이 사망했으며
  40만 채의 주택이 사라졌다. 
  한 마디로 참상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2024년 9월 25일 저녁
  고베 타워 광장에 서서 
  고베 지진 당시를 회상해 보노라. 
  외형상 상처는 치유됐지만, 
  내면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느니.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여
  결코 잊힐 수 없는 아픔이여
 
  지진 잔상이 남아있다. 
  후세 사람 교훈으로 삼으란
  교육 현장이다. 
  거기 한쪽에 일어, 영어, 한자, 한글 등
  병기된 안내판 있다. 
  재일교포 피해 또한 차고 넘쳐나고
  우리 교포 아픔도 상채기도
  현재 진행형이리라!
 
  지진, 화산 폭발 모르고 사는 대한 민족
  안전한 자연환경 물려주신 조상님 전
  이제부터라도 서로 아끼고 도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가기로 하세!
  
 이날 탐방단의 마지막 답사는 메리켄파크 산책이다. 효고현 고베시 주오구에 있는 해상공원 메리켄파크의 밤 풍경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특히 거대한 장구모양의 포트타워가 인상적이었다.

직접 올라 보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은 갖가지 장식으로 치장을 한 아리따운 여인의 몸매였다. 오색 전깃불로 밝힌 타워는 고베항과 어우러져 사람들 발길을 이끄는 명소였다. 
 
 메리켄파크는 넓은 광장이다. 바다에 접한 광장 주변으론 고베포트타워, 고베해양 박물관,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파크, 고베 메리켄 파크 오리엔탈 호텔 등 명소가 즐비했다. 유명 찻집과 빵집도 관광객 발길을 이끈단다. 
 
 메리켄은 1987년에 해양공원으로 조성되었으나,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재정비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단다. 우리는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바다와 접해있는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파크로 갔다. 고베항 한쪽에 있는 기념관은 지진 피해 복구 과정에서 지진의 피해와 복구 과정 및 복구 노력 등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탐방단 일행은 지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놓은 길이 약 60m 정도의 시멘트 잔해를 살피며 참상을 상상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가족 잃은 사람들의 울부짖음, 부상자의 신음, 부모 잃은 아이의 울음 들로 해 지옥의 불바다를 연상시킬 참혹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근처에 휴게소를 겸한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지진 당시의 기록 사진과 모형 등 피해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다. 다행히 우리 한글로도 안내가 되어있어 당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메리켄파크에 빛나는 화려한 불빛, 바닷물에 투영되는 반짝이는 불빛, 사람들 마음 속에 환희를 주는 불빛 우리는 넓은 광장을 천천히 걸으며 고베의 밤을 감상했다. 
 
 오사카가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한 현대적인 대도시라면, 교토는 살아 있는 역사 도시라 할 수 있다. 그와 반면, 고베는 이 두 곳의 장점을 합쳐 놓은 듯한 도시라 할 수 있단다. 최근엔 고베 지역의 인기가 오르면서 오사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교토보다 고베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야경 관광지 메리켄파크가 있어 고베는 그 이름이 빛나는가 보다. 시간 있어 고베 포드타워도 올라 보고, 고베 해양박물관도 견학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늦은 저녁을 장어덮밥으로 배를 채우며 포만감을 느꼈다. 어제저녁은 고기 샤브샤브를 즐겼는데, 오늘은 새로운 별식이 식욕을 돋구었다. 여행의 목적은 식도락도 한몫한다. 일본의 식문화는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는 푸짐함에 비해 일본은 간단하다. 음식 가지 수도 적고 양도 적다. 우리나라는 찌개, 김칫국 등 함께 먹는 음식이 많은 데 일본은 각자 먹는다. 함께 식사하는 과정을 통해, 같이 떠먹는 음식을 통해 정을 나누는 우리 문화가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일본 최대 현수교 아카시 해협 대교

 9월 26일 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빵과 셀러드로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현수교인 아카시 해협 대교다. 혼슈와 시코쿠를 잇는 3,911m짜리 현수교가 우리 탐방단을 맞이했다. 
 
 다리위 마이코 해상 프롬나드 산책길 입장 시각이 남아있어 다리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졌다. 진짜 길고 거창했으며 멋있었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본래의 목적인 사람과 물자의 통행에 더해,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리는 단순히 차량만 통행하는 게 아니다.

2층 다리로 보면 되겠다. 위층은 차가 다니고 아래층은 다리 관리를 위해 보수점검단원들이 통행한단다. 거기에 더해 다리 위에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이코 해상 프롬나드’란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다. 이 모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입장 시각이 되어 엘리베이터로 전망대에 올랐다. 푸른 바다, 긴 다리, 떠 있는 배, 도회지 모습을 감상하며 다리를 걸었다. 발아래로 푸른 물결 넘실거린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무서움을 느낄만한 높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고베 지진 시에도 다리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었다고 하니, 일본 사람들의 내진 설계가 완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위에는 휴게 공간이 있다. 앉아 쉴 수 있는 좌석도 있고, 기념품 가게와 찻집도 있다. 모두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다. 
 
 가까이에 손문 기념관이 있다고 했다. 왜 손문 기념관이 여기에 있을까? 중국의 손문은 혁명군을 이끌고 청나라 군대와 싸워 승리한 신해혁명의 지도자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황제가 통치하는 전제 군주제를 종식시키고, 중국 최초의 근대적 공화국 건설의 단초를 만든 혁명가다. 
 
 손문은 1912년 6월 제2혁명의 실패로 7월 일본 망명길에 오른다. 아마도 망명 시절 고베에서 생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손문기념관은 중국 상인이 기증한 건물로, 손문의 기록 등 관련 자료가 보관 전시돼 있다고 한다. 
 
 우리의 개화파 인사 김옥균이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했듯, 손문도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했음을 알고, 시대의 영웅은 한결같이 거칠고 험한 길을 걸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김옥균과 손문 모두 혁명가요, 개화사상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완의 삶을 살다 간 실패자란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다리가 많다. 인천대교가 개통했을 시 고향 충청도 사람들은 관광코스에 넣었다. 신안의 1004 대교가 관광객을 기다린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1004 대교가 아카시 해협 대교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나루토 해협의 춤추는 조류
 일본 나루토 해협은 도쿠시마현 동북단과 효고현 아와지섬 서남단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로 ‘우즈시오’ 즉 ‘소용돌이 치는 조수’로 유명한 곳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쿠시마현의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나루토 해협의 자연 조수 현상은 이탈리아 메시나 해협, 미국 세이모어 해협과 함께 세계 3대 조류 현상이라고 한다. 탐방단은 이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해상 산책로에 올라 발아래 유리바닥을 통해 45m 아래 장관을 감상했다.

짙푸른 바닷물이 흰 거품 토하며 춤을 췄다. 휘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구렁이 같았다. 바닷가가 아닌 바다 중심에서는 물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데, 여기는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닷물이 빨리 흘러가는 곳 즉 물살이 센 곳을 이름이다. 
 
 나루토 해협 우즈시오감상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크루즈선을 타고 현장을 통과하며 체험하는 것이다. 물살이 거세니 배의 속도가 매우 느림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감상하니 생동감있는 체험이 되겠다.

다음으로 대교 위 산책로를 이용해 우즈노미치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것이다. 다리 입구에서 전망실까지 450m 거리다.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편의시설임을 알 수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 왜군과 조선군의 전함 비율은 133 : 13이다. 10배가 넘는 적함을 뛰어난 전술과 필승의 신념으로 물리쳐 승리로 이끈 당시 통제사 이순신 이시다. 울돌목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사이 해협이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물살이 가장 센 곳이다. 일본 나루토 해협이 최대 시속 20km이고, 우리 울돌목이 18km라 한다. 최금환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울돌목의 조류가 센 걸 간파한 왜군 수장은 명량해전에 도쿠시마 출신 수병을 대거 참가시켰다고 한다.

울돌목보다 더 센 조류가 흐르는 나루토 해협에서 훈련한 병사들이 명량에선 손쉽게 승리할 것이란 자신감에서란다. 그러나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의 지략은 왜군의 허를 찔러 대패를 안겨주었다. 
 
 이순신은 물 빠진 울돌목에 말뚝을 박고 끈으로 묶어놓았다. 그리고 적을 울돌목으로 유인해 전투를 벌였다. 불리한 전황에도 홀로 분전한 이순신에게 드디어 기회가 다가왔다. 울독목이 왜선들로 가득찰 무렵 마침내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왜선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머뭇거리던 조선 수군들이 달려들어 화살과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왜선들은 처참한 패배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의 대승이었으며 왜 수군의 대패로 이순신의 전술과 적략이 빛나는 승리였다. 조수가 소용돌이 치는 자연 현상, 일본의 나루토 해협 ‘우즈시오’ 답사 통해 이순신의 지혜와 호국의지를 더 깊게 간직할 수 있었다. 
 
 나루토 해협 답사 후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현청 소재지 다카마쓰로 향했다. 일본 최고의 시누키 우동으로 오찬을 하기로 했다. 시누키 우동은 일본 시누키국  가가와현 일대에서 만드는 우동으로 아주 유명하단다. 
 
 신임 히로시마 총영사의 활동을 기대하며
 9월 27일 일본 강항로드 탐방 나흘째다. 일행은 오즈성, 출석사 등을 찾아 수은 선생의 발자취를 답사키로 되어있다. 그러나 탐방단원 일부는 주히로시마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방문키로 예정돼 있었다. 
 다른 탐방단 일행을 보내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마츠야마 00호텔 근처의 시로야마 공원을 찾았다. 공원 주변으론 출근하는 시민, 등교하는 학생들의 분주한 모습만이 보일 뿐 산책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행 중 “동토가 안 계셨으면 수은 선생 활동내용이 제대로 평가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승이 빛나려면 제자를 잘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수은 선생의 수제자 동토의 사은(師恩)활동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렸을 적 종조부한테 들었는데, 일제 시 용계사를 복원할 때 군수를 지낸  동토 후손 한 사람이 석달 간 공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며 정성을 들였다 합니다. 혹시 누구신지 아시나요?”  “네, 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었지요. 그래서 기록을 찾아보고 문중에 알아 보았지만, 제대로 확인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족보와 당시 상황을 살펴 하나의 결론을 얻었어요.”  “그래요. 그럼 한 번 말해주세요.”  “제가 다음에 글로 답해 드릴게요.”
 
 산책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조금 있으니, 수은 강항 선생 일본연구회 후지와라(사또) 신지로 회장이 승합차로 마중왔다. NPO 법인 한일우호협회 니노미야 시즈코 이사장과 일행은 마츠야마 공항으로 갔다. 가는 중에 마츠야마역에 들러 또 다른 일행으로 통역사인 안광란 재일교포와 함께했다. 
 
 안광란 선생은 일본에 와 일본 남자와 결혼해 생활하며, 일본연구회 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츠야마 공항에서 1시간여를 기다려 강항문화제 측에서 히로시마 총영사의 면담을 주선한 강대의 사무총장과 송은숙 강항문화교류예술단장이 나와 합류했다. K-문예제전에서 만난 후 일주일만의 상봉인데도 퍽 반가웠다. 이들은 수은 강항 선생 기념사업회와 영광내산서원보존회와 함께 강항문화제 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강대의 총장은 <수은 강항 선생 일대기>를 펴내고, 대한민국 K-선비한복대회의 축제 등을 기획하고 추진한다. 거기에 매년 강항로드 탐방단의 역할도 수행하며, 수은 강항 선생 한·일간 민간교류 업무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추가된 탐방단 일행과 함께 후지와라(사토) 회장이 준비한 승합차로 세계 평화통일 가정연합 오즈 교구로 향했다. 타키구치 토시히로 교구장이 강항문화제 한·일간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입장에서 방문했다. 
 
 타키구치 교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탐방단 일행을 현관에서 맞이했다. 2층 접견실로 올라가 다과를 겸해 토론회를 가졌다. 한·일간 강항문화제 활동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대단함을 알았다.

일본 사람들도 수은 선생을 이처럼 존경하는 데,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수은 선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 마음이 일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타키구치 토시히로 교구장은 탐방단에게 홍삼젤리를 1박스씩 선물했다. 강항문화제로 한·일 양국 국민 간 우호와 친선의 싹이 파랗게 돋아나길 기대한다. 
 
 최00 선임연구원이 히로시마 총영사관 정문에서 방문단을 맞이했다. 2층 총영사실로 안내를 받고, 9월 1일부로 부임한 강00 총영사와 의견을 나눴다. 강 총영사가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리려고  “저는 진주 강씨 선조 중에 유명한 분은 강감찬 장군만 있는 줄 알았어요.”
 
 순간 방문객 일행은 웃음을 지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총영사의 재치가 빛났다. 
 
 방문단 일행은 강항 선생의 삶과 절의정신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강항문화제가 매년 개최하며 활동을 하고 있는 바, 그에 필요한 총영사관의 협조사항을 요청했다. 
 
특히 강대의 총장은 히로시마 총영사관 관할지역 에히메현 오즈시가 지난 1990년대 영광군과 오즈시 우호협력 교류가 수은 강항으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양국의 여러 사정으로 교류가 단절되다시피 돼 이 교류의 불씨를 되 살렸으면 한다 라고 건의했다.

강 총영사는 사안에 따른 여러 말씀을 잘 들었다. 그중에 영광교육청 주관하에 초등학생 탐방단이 언제든 들어오면 오즈시를 방문해 환영하겠다, 2025년 강항 추모제 행사에 관심을 갖겠다, 2025년이 히로시마 총영사관 창립 60주년에 맞춰 할 수 있는 사안을 찾아 보겠다 라고 화답했다.
 
이어 총영사는 강항문화제 관련 책자와. 자료를 통해 수은 선생에 대한 공부를 해 보겠다. 일본 유학을 뿌리내린 그 정신이 더욱 빛나도록 노력해 보겠다 라는  답변을 뒤로하며 히로시마 총영사관을 나왔다. 방문단 일행들은 강항의 절의정신과 <종오소호> 정신이 일본인의 가슴에 새겨지길 염원했다. 
 
 방문단 중 니노미야 시즈코 이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2023년 강항로드탐방단으로 방문했을 때 만찬장에서 한 식탁에서 함께한 파트너였기에 구면이었다. 
 
 “제가 대구 시댁을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냉정해진 것 같아 슬펐어요.”  “아니, 그게 무슨 뜻이세요?”
 시즈코 이사장은 오랜만에 시가(媤家)가 있는 경북 경산을 방문했단다. 대구에 사는 시누이네 들렀다가 아침에 산책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으나, 본체만체 그냥 지나쳐 버리더라 라고 했다. 
 
 “아마도 무슨 사연이 있었을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다 예의바르고 친절하니 괘념치 마세요.”  쑥쓰러운 마음에 머쓱해하며 말하고서도, 시즈코 이사장의 변함없는 대한민국 사랑을 염원했다. 

다음호에 이어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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