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살아가면서 사회적 동물임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사례가 있다. 사회생활이란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말한다. 獨不將軍(독불장군)이란 단어가 그래서 생겨났다.
2012년 봄!!
1592년 임진왜란이후 임진년 60회의 거듭됨으로 7주년을 맞이한 2012년에 7주년기념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무너지고 말았던 곳에 세 분의 장군이 活火山(활화산)처럼 우리 가슴에 살아 계신다.
당시 조선군이 1차 진주성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라 왜놈의 수장인 토요토미히데요시가 대노하여 10만 대군을 내세워 다시 쳐 들어와 2차 진주성전투가 벌어진다.
잠깐 쉬어가자면 최경회장군의 병약한 본처가 적극 권해서 후처로 들어온 논개의 義俠心(의협심)에 찬 적군의 왜장을 끌어안고 꽃잎처럼 진주 남강에 떨어진 이야기는 더 유명하게 역사로 남아 도도히 흐르고 있다.
2차 진주성전투에서 대패후에 낙심한 최경회장군, 김천일장군, 고종후장군(고경명장군 아드님)이 진주 남강의 촉석루에 올라 絶命(절명)시를 지으며 왜놈에게 붙잡혀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으로 애국하겠노라 결의하셨다.
이러한 역사적인 관점을 잘 알고 있는 後代(후대)에서 뜻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와 後孫(후손)들이 이 세 장군이 절명하신 그 節義(절의)를 엄숙히 기리는 추념식을 화순 최경회장군 사당에서 갖기로 하였다.
주최측인 추진위원회 집행부에서는 장흥고씨종회와 언양김씨종회에 행사 요지를 설명하고 많은 후손들의 참석을 위한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양김씨종회에서 獻官(헌관)을 문중의 한사람인 언양김씨종회 關係者(관계자)를 넣어야 한다고 뜸금없이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當代(당대)에서 조상을 높이 모시는데 후손이 獻官(헌관)을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고 설사 후손의 입장에서 獻官(헌관)을 한다는 건 이 시대의 識者(식자)층으로부터 웃음거리로 자초할 수 있으니 辭讓(사양)해 달라고 간곡하게 그러한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관자리에 대해 끝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결국은 언양김씨종회 임원들은 대거 불참한 가운데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初獻官(초헌관)으로 하는 추모제가 그나마 차질없이 개최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동물로 사회생활에서 인간은 죄를 짓고 살지 못한다고 흔히 말한다.
광주유교대학은 비록 비인가시설이지만 20년 역사를 안고 이 지역에서 儒林(유림)을 배출하고 있다. 광주유교대학은 유생을 양성하는 2년제 기관으로 매년 수 십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총학생회장의 책임아래 성과물로 매회 유대지를 제작해 배포한다.
당시 유도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강모회장을 찾아온 당시 총학회장은 의욕이 넘쳐 강모회장을 살갑게 찾아와 친동생 00과 모대학교 동기동창이라고 말해 격의없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는 총학생회장으로 유대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의견을 맞추고 도출해 낸 사안이 유대지 표지의 ‘유대지’ 글씨와 ‘광주유교대학’ 글씨를 유명 서예가의 서체로 맡겨 후배들에게도 그 서체로 광주유교대학 유대지의 역사와 전통성을 이어가자고 전격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널리 알려진 학정체는 세계적으로도 名聲(명성)이 알려진 학정 이돈흥선생을 知人(지인)으로부터 소개받기로 하였다. 한약방을 운영하는 이 원장은 평소에도 사비를 털어 화순의 단군신조를 올바르게 모시고 있었고 왕성한 사회봉사사활동으로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유명하고 아주 훌륭한 분으로 정평이나있다.
이 분은 학동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취미의 경지를 넘어 서예가로도 활동하는 유명한 분으로 학정 이돈흥선생과도 친밀한 교류가 있어 흔쾌히 소개받기로 하고 세 명이 함께 자리를 마주 한 순간이었다.
한약방을 운영하는 그 원장은 유도회장을 향해 들으라는 듯 '왜 저런 못 된 사람을 데리고 왔느냐'며 '저 사람이 끝까지 獻官(헌관)을 달라고 했던 그 종회측 사람이었다'며 화를 내며 큰소리로 꾸중을 했다는 것이다. 순간 당황한 유도회장은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인데 그래도 원장님의 너무 말씀이 심하지 않느냐'며 무색해 했다고 한다.
인간은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아니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는 말도 있다.
사건의 발단이 이러하듯 이쯤되면 인간의 만남에서 옷깃을 스치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자리이고 그 당사자가 그 원장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토록 무모한 요구를 한 사람은 종회 차원의 관계자였으며 그 모 원장은 임진년 7주년 추념식 행사 집행부측 인사였던 것이다.
그날 저녁 무렵 총학생회장은 어색한 관계를 복원할 생가에선지 모르지만 한사코 저녁을 하자고 권해서 그 학생회장 자가용 승용차편으로 화순읍까지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은 감정이 풀리지 않은 그 원장은 하나에서 열까지 강유도회장에게 모두 말해주면서 절대 저런 사람과는 상종도 안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총총히 가버린 아픈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다!!
그러니 아무리 주변에서 어떠한 주장이 있다한들 옳고 그름을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하며 설령 급진적인 반대에도 반대를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는 것이며 모름지기 선비란 어떠한 일이든 大義名分(대의명분)을 갖는 것은 삶도 不辭(불사)할 만큼 중요하다!!
그걸 모르고 지금 까지도 아무런 大義名分(대의명분)없이 저토록 무모하게 자기가 속해 있는 환경과 집단 안에서 모든 일에 앞뒤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是是非非(시시비비)를 가리려고도 하지 않는 저 인사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