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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기와 시상와기의 등원성와(후지와라 세이카)

유불 논쟁 벌인후 강항선생 영향에 힘입어 승려복 벗고 심의(유복, 선비복)유자로 거듭 나
등록날짜 [ 2019년05월06일 15시47분 ]

《성재기》(惺齋記)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국에 포로로 끄력1600년경 조선 후기의 유학자 강항(姜沆)이 당시 왜국인 일본인들을 위해 지은 유교 서적이다.
등원성와(후지와라세이카)성재기 첫 장
수은 강항의《성재기》(惺齋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들이 산더미처럼 많은 서적들을 노략질 해 간 서적들이 많았지만 일본의 유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본 유교의 텍스트 북이다.

강항은 일본에 유교를 전할 목적으로 《성재기》와 《시상와기(是尙窩記)》를 손수 써서 일본의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에게 줬으며
후지와라 세이카의 본명은 순수좌(蕣首座)로 세이카의 개명한 이름이자 호인 세이카(惺窩)는 강항이 그에게 손수 써준 《성재기》와 《시상와기》에서 각 각 한 글자씩 따서 붙인 것.
등원성와(후지와라세이카)의 시상와기의 첫문장
1597년 정유재란 때 강항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의 예하 부대인 오즈 성주 사도(佐渡)의 부하 노부시치로(信七郞)에게 논잠포 앞바다에서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일본에서 유자들을 문인으로 길러냈다.

당시 왜국의 수도인 교토의 쇼코쿠지(相國寺) 묘수원(妙壽院) 사찰의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는 불교 승려였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의 심복인 승려와 유불 논쟁을 벌인이후 강항의 영향에 힘입어 승려복을 벗고 심의(유복, 선비복)로 고쳐 입은후 후일 왜국을 대표하는 유학자(儒學者)로 거듭 났다.

<자료 제공 김덕진 광주교육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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