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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카프카와 프라하 (8)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밀레나 예젠스카와 결별
등록날짜 [ 2020년10월25일 19시0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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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밀레나는 카프카와의 결합 또는 결혼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밀레나의 여자 친구들과 접촉하고, 이혼 전문 변호사와 상담했다. 1920년 10월쯤에 카프카는 밀레나가 남편과의 이혼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밀레나와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사람 간의 편지 왕래는 10월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12월18일에 카프카가 슬로바키아 타트라 고원의 마틀리아리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집중적인 편지 왕래가 끊긴다. 하지만 1921년에도 두 사람의 서신 왕래는 간혹 이루어졌다. 

그런데 마틀리아리 요양원에서 카프카의 건강은 심각했다. 그는 프라하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고열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마틀리아리에서 3개월만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체류는 두 번 더 연장되어, 1921년 8월 말이 되어서야 카프카는 프라하로 돌아간다.


카프카는 마틀리아리에서 젊은 의사 로버트 클롭슈톡을 만났다. 처음에 그는 상당히 다루기 힘든 헝가리 출신의 청년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프카와 친해졌다. 

한편 카프카가 만난 여성 중에서 펠리체, 밀레나, 도라 디아만트 그리고 누이동생 오틀라 등은 지적이며, 생기가 넘치고 독립심이 강했다. 그 중에도 밀레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살아있는 불꽃이었다.

밀레나는 행복의 원천으로서 어머니의 이미지로 카프카에게 각인되었고, 이 때문에 카프카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

1921년 10월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친구 막스 브로트조차 읽지 못한 일기를 적은 공책을 넘겨준다. 이미 밀레나는 『실종자』와 『성』과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의 원고를 보관하고 있었다.  카프카는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신뢰를 보인 적이 없었는데 밀레나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밀레나는 시대와 불화한 카프카를 꿰뚫고 있었다. 밀레나가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그에게는 손바닥만한 은신처조차 없었어요. 엄호물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우리가 보호받고 있는 그 모든 것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옷 입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벌거벗은 사람 같아요. 그리고 그의 금욕은 비영웅적입니다. ...


영웅주의란 언제나 허위이며 비겁한 것입니다. 자신의 금욕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정당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놀라운 형안과 순수를 지녔고 타협은 도저히 할 수 없기때문에 할 수 없이 금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요. ... 저는 알고 있어요. 그가 생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지금 생의 방식에 저항한다는 것을 ”(막스 브로트 <카프카 전기>)

카프카에게 고독은 글쓰기의 조건이며, 글쓰기가 끝나는 시점에 삶의 불안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의 건강한 삶을 읽을 수 있다.


카프카에게 밀레나는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새로운 통로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밀레나는 삶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진통제에 지나지 않았다.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역시 불안의 산물이며, 글쓰기가 곧 구원이라는 카프카의 일관된 문학관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카프카와 멜레나와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가 카프카를 떠난 것은 카프카의 우유부단과 소심함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비련으로 끝났지만 훗날 밀레나에게 닥칠 가혹한 운명을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이 시기는 밀레나에게 클라이맥스였다.

밀레나는 신념을 굽히지 않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했을 때는 반나치 운동을 벌였고, 이로 인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녀는 1944년 5월 7일 여성 전용 강제수용소 라벤스부룩에서 비극적 삶을 마감한다. 카프카가 죽은 지 꼭 20년 뒤였다.

(조성관 지음,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p 57-61)


사진  카프카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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