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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영국인이 본 조선 사회 부패 (3)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개혁은 퇴보하였고 고종은 절대군주였다!!
등록날짜 [ 2021년01월05일 09시4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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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리학자 비숍 여사(1831∽1904)가 1897년 11월에 지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책의 마지막 장은 ‘제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이다. 이를 읽어본다. 
 

조선사람들의 힘은 휴지 상태이다. ... 조선은 모든 면에서 미흡하고 열악하고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계층적 특권, 국가와 양반들의 수탈, 불의(不義), 불안정한 수입, 개혁되지 않은 다른 모든 동양 국가들이 기초하고 있는 최악의 전통을 수행해온 정부, 책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식적 약탈자들, 대궐과 대단찮은 후궁에 칩거하며 쇠약해진 군주, 국가 내의 가장 부패한 사람들 간의 밀접한 연합, 이해관계가 얽힌 외국의 상호 질시, 널리 만연되어 두려움을 주는 미신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인상이었다.

(중략)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도록 반복했다. (중략) 지방관과 양반들의 대출 강요와 수탈로 말미암아 경작자가 해마다 감소하는 농부들이 부지기수로 있는데, 그들은 현재 겨우 하루 세 끼 식사가 가능한 정도이다. ...

여러 가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 하고있는 하층민들이다.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망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댓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어야 한다.

(비숍 지음,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집문당, 2019,      p 458- 462)
이어서 비숍여사는 조선의 내부 상황에 대해 마무리 멘트를 한다.

 

“비록 오늘날 조선을 불리한 시대 상황의 결과이지만, 그래도 백성들을 나의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1897년의 눈에 띄는 퇴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미래에 대해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로 조선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할 때 외부로부터라도 개혁되어야 한다. 둘째로 군주의 권력은 엄중하고도 영원한 헌법의 아래에 놓여야 한다.”(위 책, p 465)

비숍은 조선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개혁이고 둘은 군주권 제한이다. 하지만 비숍의 소망은 1897년에 세워진 대한제국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혁도 퇴보하였고 고종은 절대군주였다.     

1899년 8월 17일에 반포된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는 제2조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래 되었고, 앞으로 만세토록 불변할 전제 정치(專制政治)이다.’, 제3조에는 ‘대한국 대황제(大皇帝)는 무한한 군권(君權)을 지니고 있다. 공법에 이른 바 정체(政體)를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제4조는 ‘대한국 신민이 대황제가 지니고 있는 군권을 침손(侵損)하는 행위가 있으면 이미 행했건 행하지 않았건 막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인정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대한제국은 고종 황제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절대군주 국가였다. 


즉 대한국 국제(대한제국 헌법)는 황제에 관한 대권만 규정되어 있을 뿐 국민의 권리에 대한 규정은 없다. 대한제국 황제는 육해군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관리임명권, 조약체결권, 사신임면권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한 전제군주였다. 1896년에 1년간 아관파천을 한 고종의 이상적 모델은 러시아 차르였다.

한편 게일 목사(Gale 1863∽1937)가 1909년에 지은 『전환기의 조선』에 적힌 고종황제(1852-1919, 재위 1863-1907)의 평가를 읽어보자. 캐나다 출신 게일 목사는 1888년에 조선에 와서 1903년에는 황성기독청년회(YMCA) 초대 회장을 하였고, 1928년까지 조선에 살았다.

 “조선에서의 위대한 아버지는 그의 백성들을 유례없는 비탄의 상태로 빠뜨리고자 하나님이 선택한 폐위된 황제였다. 그런 상태 아래에서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생각한다 할지라도 조선이 꿈꿔왔던 것보다 더 많은 희망이 가려진 것이다. 


 비록 황제가 20세기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한 다른 외부 세력을 잊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했던 루이 14세처럼 말할 수 있었다. 고종의 걸음은 퇴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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