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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5)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미국 부영사 윌라드 스트레이트, 을사늑약 장면을 기록하다.
등록날짜 [ 2021년03월08일 15시09분 ]

미국 부영사 윌러드 스트레이트는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된 밤의 광경을 미국공사관 담 너머로 모두 보았다. 수옥헌(漱玉軒, 지금의 중명전)은 미국공사관과 맞붙어 있었다.

윌러드는 러일전쟁 취재차 일본에 온 AP기자였다. 그런데 그는 1905년 6월에 덜컥 주한미국 공사관 부영사로 임명되었다. 1905년 6월 26일에 윌러드는 고종을 수옥헌에서 알현하였다. 고종은 1904년 4월에 경운궁이 불타서 이곳 2층에서 지내고 있었다. 

 
1905년 7월 2일에 윌러드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이봐, 궁전이 바로 옆이야. 우리가 공사관 뜰로 들어왔더니 황제가 침대 의자에 앉아서 우릴 쳐다보더라고.  ... 도대체 이런 나라를 상상할 수 있겠어! 나는 못해.” 한편 윌러드는 11월 17일 밤 을사늑약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미 무력으로 조선을 장악한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파견하여 조약의 형태로 조선을 강점을 공식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공사관 창문을 통해 궁궐 안으로 일본 군대및 경찰이 몰래 잠입하는 것과 매우 불안한 표정을 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조선 대신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순간 창백한 얼굴을 한 고종과 왕자가 창문 커튼을 옆으로 밀고 살짝 밖의 동정을 살폈다. 이것이 바로 몇 시간 후면 조인될 보호조약의 긴장된 장면이었다.


그날 밤 10시 소란한 소리와 함께 일본군은 떠나고 있었으나 아직도 궁궐 내에는 일본 경찰들로 꽉 차 있었으며 관복을 입은 한국 관리들은 나라를 잃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었다. 불과 100여 미터 앞에서 한 나라의 운명이 맥없이 절단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 특히 1천 2백만의 인구를 지닌 독립왕국이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한 채 이렇게 무기력하게 강점당하는 모습에 침통함을 느낀다.

(백성현·이한우 지음,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새날,2006, p 372-373)

윌러드는 친구인 블랜드에게 보내는 1905년 11월 29일의 편지에도 이렇게 적었다. “새벽 두 시에 잔디밭에서 수옥헌을 보니 건물 주변은 물론 베란다까지 일본인들이 가득했다. 뒤편 프랑스 공사관 통로에도 가득했다. 황제가 여차하면 거기로 도망갈까 예상하는 듯 했다.

이곳 상황은 참 놀랍다. 왕관을 쓴 자들 가운데 최악으로 비겁하고 최하급인 황제는 궁전 속에 움츠리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 타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황제는 외부대신에게 조약에 서명하라고 지시하고서는 자기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또 지시했다. 그래서 외부대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   

의정대신 한규설은 회담장에서 쫒겨났다. 황제명령을 어기고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한규설은 그 파란만장한 밤에 엄비 방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엉겁결에 황제에게 대신들로 하여금 나라를 배신하지 말게 하라고 간청해버린 것이다. 이 행동으로 한규설은 3년 형을 받았다. (중략)


제일 얼토당토 않는 일은, 저들은 무슨 일이 닥칠지 벌써 경고가 돼 있었고 그래서 늦기 전에 이 사태가 오지 않도록 충고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들은 마치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처박고 사태를 똑바로 보려하지 않았다.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2020, p 325-326, 355, 원전: The Wilard Straight Papers 코넬 대학 소장, 1905년 11.29 편지 Straight to Bland)

그랬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나서 고종이 맨 먼저 한 일은 조약 체결에 반대한 의정부 참정대신 한규설을 파면하고 전라북도 관찰사 민영철을 의정부 참정대신에 임명한 것이다. “조령(詔令)을 내렸다.

의정부 참정대신 한규설은 황제의 지척에서 행동이 온당치 못하였으니, 우선 본 벼슬을 면직시키라.” (고종실록 1905년 11월 17일 2번째 기사)

그나마 한규설은 윌라드의 편지 내용과 달리 3년 유배는 면했다.  

< 참고문헌 >

o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와이즈맵, 2020,

o 백성현 이한우 지음, 파란눈에 비친 하얀 조선, 새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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