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 25일에도 을사늑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2-10번째 기사) 이 날 종1품 이유승이 한일협상 조약을 맺은 신하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지금 일본과의 조약에 대한 말을 듣고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려서 자리에 누워 눈물만 흘리는데 죽은 곳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조약이 폐하의 재가를 거치지 않았고 여러 신하들의 상소가 연속 올라와 아마도 폐하의 뜻이 확고해지고 분연히 결단하여 망해가던 나라의 형세가 회복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외부대신 박제순을 의정 대신 대리로 임용하였습니다.
아! 저 박제순으로 말하면 얼이 빠져서 충성과 반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을 달게 여기며 저들의 첫 앞잡이로 된 자인데 마치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표창이나 하는 것처럼 외부의 사무를 그냥 보게 하고 정사의 으뜸이 되는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일 조인에서 ‘가(可)’라고 쓴 역적들도 장차 높은 벼슬에 등용될 것이니 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폐하는 종묘사직을 이 무리들의 독살스러운 손에 떠맡겨 제멋대로 끊어버리도록 하는 것을 어찌 차마 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폐하는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쫒아 ‘가(可)’ 자를 쓴 역적들을 법으로 다스리고 인재를 선발하여 준엄한 말로 조약을 물리친다면 나라의 권위가 보존되고 나라의 법이 시행될 것입니다.”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이런 말은 하는 게 당연하지만 어찌 짐작하여 헤아린 것이 없겠는가?"(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2번째 기사)
종2품 박제빈도 역적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아! 통분스럽습니다. 이번 다섯 가지 약관(約款)이 일본 공사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만 실상은 조인한 역적들이 처음에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바쳐 그들의 주구가 되고 마지막에는 우리 백성들을 몰아다가 그들의 신하로 만든 것입니다. 조인한 역적들을 처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민영기, 이하영도 들과 같은 죄를 모면하기 어렵습니다. "
고종은 "여러 상소에 대하여 내린 비답을 참조해서 보라."고 답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3번째 기사)
한편 학부 편집국장 이종태가 상소하여 가(可)로 표기한 신하들과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으므로 벼슬을 파면시켜 줄 것을 청하였다. 고종은 "말은 옳으나 무엇 때문에 물러가겠다고 하는가? 사임하지 말고 공무를 보라."고 비답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4번째 기사)
이어서 비서감 낭(祕書監郞) 정홍석이 하루저녁에 ‘가(可)’자 한 글자를 써서 나라를 넘겨준 역적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고종은 "이미 경이 올린 상소에 대해 비답을 내렸다."고 답했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5번째 기사)
법관 양성소 교관 정명섭 등도 상소하여 조약 체결에 찬동한 여러 신하들을 법부에 넘겨서 국법을 바로잡고 조약문을 철회하고 온 나라에 선포함으로써 그것이 무효임을 보이자고 아뢰었다. 이에 고종은 "그대들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고 비답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양력 6번째 기사)
아울러 전 비서원 승(祕書院 丞) 윤두병도 재차 상소하였다. "전 참정대신 한규설은 행동거지가 온당치 못하였다는 것으로 벼슬에서 파면당하였고 역적 박제순은 대뜸 수석대신(首席大臣)으로 임용되었습니다. 만일 참정대신이 직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여 나라에 치욕을 끼친 것을 가지고 죄를 받았다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그 좌석에서 의논하여 결정하는 한 가지 절차에서는 확고히 입장을 고수하였는데 지금 다른 하찮은 과오를 가지고 견책을 받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 괴수는 도리어 은혜로운 임용을 받았으니 표창과 형벌이 거꾸로 되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온 나라 사람들의 의구심을 풀겠습니까? 그 역적들을 빨리 국법(國法)으로 다스리고 이른바 약관이라고 하는 것은 도로 철회함으로서 종묘사직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로하소서."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이미 앞서 비답을 내렸으니 모두 이해해야 할 것이다."(고종실록 1905년 11월 25일 7번째 기사)
고종은 무엇을 모두 이해하라고 비답한 것인가? 표창과 형벌이 거꾸로 된 것을 이해하란 말인가? 역적을 국법으로 다스리지 않은 것을 이해하란 말인가? 아무튼 고종의 비답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