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27일에 물러가라는 고종의 명령에도 불응하고 대궐 뜰에서 호소한 조병세와 이근명이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재차 상소하였다.
"신들이 근심과 울분에 사로잡혀 망령되게 저희들의 생각을 아뢰고 모여서 명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헤아려 처리할 것이라는 비답만 내리시고 시원스러운 윤허를 주저하시니 더욱더 안타깝고 억울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종묘사직의 존망이 여기에 달려 있고 폐하의 안위가 여기에 달려 있으며 신민(臣民)의 생사 역시 여기에 달려 있으니 진실로 무엇보다 먼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들을 처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 각국 공사관에 성명을 내고 모임을 열어 담판을 한다면 강제로 체결된 조약을 폐지하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시일만 끈다면 순식간에 폐하의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니 폐하의 일이 없어지면 종묘사직과 신민들은 장차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분연히 결단해서 빨리 처분을 내리소서."
이러자 고종은 짜증스럽게 비답하였다. "어제 내린 비답을 이해할 줄 알았는데, 이렇듯 재차 상소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이처럼 크게 벌일 일이 아니고 또 처분을 내릴 것이니 경들은 그리 알고 물러나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고종실록 1905년 11월 27일 3번째 기사)
하지만 조병세와 이근명이 물러나지 않았다. 고종은 조령을 내려 대궐 밖으로 내쫓았다.
“조령(詔令)을 내렸다.‘반복하여 타이른 것이 서너 번만이 아니었으니 응당 타이르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굳게 고집하니 자못 온당치 못하다. 특진관 조병세·이근명을 모두 궐문 밖으로 내쫓는 조치를 취하라.’” (고종실록 1905년 11월 27일 4번째 기사)
고종과 원로대신들의 관계는 갈수록 험악해졌다. 이윽고 종1품 이근수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아! 저 여러 역적들은 외국 사람에게 아부하여 일신의 부귀만 탐내고 온 나라가 멸망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매국 역적을 폐하께서 비호해 준다면 마침내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조종이 남기신 왕업을 생각하시어 여러 역적들을 모두 처단하여 거리에 매어달 것이며 위조한 조약문을 즉시 물려서 없애야 합니다."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방금 대신들이 연명으로 올린 상소문에 비답을 내렸다."(고종실록 1905년 11월 27일 5번째 기사)
아울러 중추원 찬의 홍순형도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듣건대 정부에서 새로 조약을 체결하였다는데 그것이 얼마나 중대하게 관계되는 것입니까? 그런데 폐하의 결재도 거치지 않고 본 중추원에도 묻지 않고 대뜸 응해서 나랏일을 망쳤으니 어쩌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까?
해당 사안이 설사 폐하의 재가를 거치지 않았다 해도 당일날 회의에 참가한 신하들에게 조금이나마 인간의 도리가 있었다면 준엄하게 거절하고 준엄하게 물리치는 것이 의분상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참정과 한두 신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단을 하지 못하고 세력에 빌붙어 한갓 제 몸이 있다는 것만 알고 나라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서 마침내 전에 없던 일을 빚어낸단 말입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죄를 주어야 할 신하들을 빨리 법부에 명하여 다스려 처단함으로써 나라의 법을 바로 세우고 기강을 밝히소서."고종은 "금방 대신들의 연명 상소에 비답을 주었다."고 답했다.(고종실록 1905년 1월 27일 6번째 기사
이어서 표훈원 총재 박정양도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이번 여러 역적들이 천하 국가를 저희 무리들의 손 안에 쥔 물건으로 여기고 여러 사람들과 의논도 없이 폐하의 재가도 거치지 않고서 ‘가(可)’ 자를 썼는데 천하도 뒤따라 찬성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천하가 모두 불가(不可)하다고 말하니 저 무리들이 좋다고들 말한 것은 사사로운 것이고 거짓인 것이니 좋다고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체결되었다는 조약은 자연히 빈말이 되어버릴 것이므로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근심스러운 것은 여러 역적들이 아직 처단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그냥 원래 벼슬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혹은 의정 대신을 임시로 겸임하기까지 하면서 평상시에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있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폐하께서 허물을 포용해 주시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인자함을 믿고 천하의 공론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천하에서 폐하를 어떤 임금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즉시 역적들을 처단하지 않으면 국가의 정사가 없어질 것이니, 폐하께서는 빨리 처분을 내리소서."고종은 “방금 대신들이 연명으로 올린 상소문에 비답을 내렸다."고 답했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7일 7번째 기사 )
고종의 비답은 천편일률이다. 너무 무성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