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 27일에 시골에 사는 최재학이 상소하였다.
“을사조약을 맺은 역적 박제순·이지용·이근택·권중현·이완용은 조종(祖宗)의 강토를 하루아침에 외국 사람에게 내주고 온 나라의 백성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려고 하였으니 그 반역의 큰 죄는 만 번 죽이고 천 번 목을 베어도 오히려 가벼울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역적 무리들을 빨리 나라 법으로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7일 8번째 기사)
전 비서원 승(丞) 이위래도 을사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7일 9번째 기사)
많은 신하들이 박제순등을 처벌하라고 상소했지만 고종은 거꾸로 행동했다. 고종은 11월 28일에 외부 대신 박제순을 의정부 참정 대신(參政大臣 총리)에 임용하고, 외부 협판(協辦 차관) 윤치호에게 대신의 사무를 서리(署理)하라고 명했다.(고종실록 1905년 11월 28일 1번째 기사)
고종의 이중성이다. 고종은 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떤 모습인 진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윽고 비서감 경(祕書監 卿) 이우면 등이 상소하여, 특진관 조병세·이근명을 문밖으로 내쫓는 법을 철회하라고 청했다. 하지만 고종은 "이것은 사체(事體)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니 응당 처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비답했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8일 2번째 기사)
한편 시종부 무관장(侍從府 武官長) 민영환 등이 을사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신들이 두 재상의 뒤를 따라 속히 역적들을 처단하고 강제 조약을 돌려보내는 일로 한 번 호소하고 재차 호소하였지만 아직 유음(兪音)을 받지 못하였습니다.이제 두 재상을 본직에서 파면한다는 칙지(勅旨)를 받고, 파면당한 재상은 의리를 지켜 함께 나갔지만 신들은 의리가 따로 있어 같이 물러나갈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다시 연명으로 호소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넓고 깊이 살펴 빨리 처분을 내려 매국 역적들을 처단하고, 다시 강직하고 충성스런 신하를 선발하여 외부 대신으로 임명하여, 성명을 내고 회동하여 담판하게 하소서. 그런 다음에야 강제 체결된 조약이 폐지되고 나라가 보존될 것입니다."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이미 여러 번 칙유하였으니 이해해야 할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구는가? 경들의 충성스러운 말을 왜 모르겠는가? 속히 물러가라."(고종실록 1905년 11월 28일 3번째 기사) 하지만 민영환 등은 다시 상소하였다.
"신들이 세 차례에 걸쳐 연명으로 호소하여 삼가 비지(批旨)를 받들었습니다. 번거롭게 한 죄를 관대히 용서하시고 따뜻하게 타이르심이 간절하고 진지하니, 감격을 무엇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신들을 충성스럽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이는 여러 역적들을 처단해야 한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처단해야 하는데 처단하지 않고 윤허해야 하는데 윤허하지 않으시니, 여기서 성상께서 마음속에 무엇인가 참작하여 헤아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러러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이 신들 역시 전혀 두려워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해와 달처럼 명철한 황상(皇上)께서는 응당 신들이 절대로 그만둘 수 없으리라는 것을 굽어 헤아려 주셔야 할 것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는 송구함은 작은 것이고, 말을 하지 않은 죄는 큰 법입니다. 이제 다만 받들어 순종하는 것이 의리라고 하여 서로 이끌고 물러간다면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나라와 함께 같이 망할 것이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 소청은 폐하께서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조정에서 우리 법을 시행하여 처단해야 할 자를 처단하고, 사무를 주관할 대신을 골라 임명해서 조약을 폐지하기 위한 방도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참작하여 헤아린 것이 있다며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비록 나라는 존재해도 망한 것과 같습니다. 같이 망하는 것보다 우리의 법을 시행하여 후세에 할 말이 있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통곡에 눈물이 흘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 시행하소서."그런데 고종은 "또한 이미 거듭 타일렀는데도 이렇게 구니, 이는 서로 믿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비답했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8일 4번째 기사)
고종은 을사오적을 처벌할 의사가 전혀 없다. 왜 그런가? 왜 을사오적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대신 박제순을 총리로 승진시키는가? 도무지 고종의 속내는 알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