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10월02일fri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김세곤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 을사늑약 톺아보기 (18)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민영환의 명함 유서 2통, 국민에 보내는 유서와 각국 공사에 보내는 유서남기다!!
등록날짜 [ 2021년05월02일 13시47분 ]

1905년 11월 30일 새벽 6시에 민영환(1861∽1905)이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칼로 자결했다. 나이 45세였다. 11월 29일에 평리원에서 처벌을 기다리다가 석방된 민영환은 다시 소를 올리기 위해 장소를 종로 백포점으로 옮기고 판서 민영규, 김종한, 남인철 등과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 날 오후에 민영환은 서대문 밖에 있는 본가에 가서 생모 서씨와 아내 박씨를 찾아 작별을 하였다. 그리고 전동 회화 나뭇골에 사는 옛 청지기인 의관(醫官) 이완식의 집(현 인사동 공평빌딩 앞)을 찾았다.

이튿날 아침 6시경에 민영환은 평소 가지고 있던 작은 칼로 자신의 배와 목을 찔러 순절하였다. 처음에는 작은 칼로 복부를 찔렀지만 칼이 작아 깊이 들어가지 않자, 손에 묻은 피를 벽과 의복에 여러 번 문질러 씻고 난 뒤에 다시 찌르고 하였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목을 찔러 두 치 넓이의 구멍을 내어 유혈이 방안에 가득한 채 절명했다.

민영환의 소매 속에서는 명함 앞뒤로 쓴 유서 2통이 나왔는데 그것은 국민에게 보내는 유서와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였다. 이 유서는 1905년 12월 1일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다.

 
이 명함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도 복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면 민영환의 유서를 읽어보자.
  먼저 ‘국민에게 보내는 유서(警告韓國人民)’이다.

“오호(嗚呼)라! 나라와 백성이 치욕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들은 곧 생존경쟁 속에서 진멸(殄滅)되어 갈 것입니다. 무릇 살기를 구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사는 법이니, 제공(諸公)들이 어찌 이것을 모르겠습니까? 이 영환(泳煥)은 마침내 한 번 죽어 황상의 은혜에 우러러 보답하고, 또 우리 2천만 동포 형제들에게 사죄하고자 합니다. 이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구천 아래에서 제군(諸君)들을 도울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형제 동포들이 천만 배나 더 분발하여 지기(志氣)를 굳건히 하고 학문에 힘쓰며, 서로 죽을 힘을 다하기로 결심하여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이렇게 죽는 사람도 마땅히 저승에서 기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럼 이것으로 우리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고별인사를 올립니다.”

사진 민영환 유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이어서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各公館寄書)’이다. “영환은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으므로 죽음으로써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또 2천만 동포에게 사죄하옵니다. 죽은 사람은 그만입니다만 지금 우리 2천만 인민들은 곧 생존경쟁 속에서 진멸되어 갈  것입니다. 귀 공사(貴 公使)들이 어찌 일본의 행위를 모를 리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귀 공사 각하는 다행히 천하의 공의(公議)를 중하게 여기시고, 이 사실을 귀 정부와 인민들에게 보고하여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을 도와주신다면, 이렇게 죽는 사람도 마땅히 지하에서 기쁘게 웃으며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아! 각하는 부디 우리 대한을 경시하거나 우리 인민의 뜨거운 마음을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시종부 무관장(侍從府武官長) 육군 부장(副將) 민영환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은 고종은 조령(詔令)을 내렸다.

“이 중신은 타고난 성품이 온후하고 의지와 기개가 바르며, 왕실의 근친으로서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보좌한 것이 많았고 공적도 컸다. 짐이 일찍부터 곁에 두고 의지하며 도움받던 사람인데, 이 어려운 때에 괴로운 심정이 절절하여 분연히 제 몸을 돌보지 않고 강개하고 격렬해져 마침내 자결하였으니, 충성스럽고 의로운 넋은 해와 별을 꿰뚫을 만하다. 짐의 마음의 비통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卒)한 육군 부장 민영환의 상(喪)에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고, 궁내부에서 1등급 예장(禮葬)을 기준으로 지급하여 겸장례(兼掌禮)를 보내어 호상(護喪)하게 하고, 장사(匠事)는 영선사(營繕司)에서 거행하게 하라.

의정 대신(議政大臣)의 직임을 추증하고, 예식원(禮式院)에서 정문(旌門)을 세우고 시호를 주는 은전을 시행하게 하되, 시장(諡狀)을 기다릴 것 없이 정문을 세우기 전에 시호를 의논하도록 하라. 성복(成服)하는 날 정경(正卿)을 파견하여 치제(致祭)하게 하되 제문은 마땅히 친히 지어서 내려 보내겠다.  모든 관리들은 나아가라.”

이어서 고종은 민영환의 노모(老母)의 정리가 가련하니 중사(中使)를 보내 위문하라 하고, 민영환의 자식에게 비서 승(祕書丞)을 보내 위문하고 구휼하라 했다. 그리고 민영환의 상에 각종 비단 10필(疋), 무명과 베 각 5동(同), 돈 1,000환(圜), 쌀 30석(石), 전칠(全漆) 1두(斗)를 특별히 수송하라고 조령을 내렸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30일 2번째 기사)

저작권자 ⓒ 이데이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 0 내려 0
김세곤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19)
<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17)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19) (2021-05-04 10:56:10)
<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17) (2021-04-29 16:37:25)
전남광주특별시, 화순하니움문...
'「영광읍 구 시가지 상권 활성...
‘나주 글로벌 에너지포럼 2026...
전남광주특별시, 시민참여형 ‘...
광주특별시 서구, 야간‧...
광주특별시 남구, 효덕동 행정...
순천시, 소상공인 금융지원 4분...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