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2월 4일에 학부 주사 이상철과 징발되어 올라온 3대(隊)의 상등병(上等兵) 김봉학이 충의와 울분으로 자결했다. 고종은 조령을 내려 조의를 표하고 장례비를 보냈다. (고종실록 1905년 12월 4일 1번째 기사)
그런데 지규식은 <하재일기>에서 “평양의 병대(兵隊)에 소속된 김봉학이 민영환의 자결 소식을 듣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였다.”고 기록했다. (서재필 외 지음 · 안대회 외 5인 편역, 한국 산문선- 근대의 피 끓는 명문, 2020, p 265)
출처, NAVER 인물검색 민영환 독립운동가
한편 서울 계동(桂洞)에서 인력거를 끄는 인부가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는 옛날에 민영환의 사랑채에서 살다가 계동으로 이사하여 인력거를 끌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때 민영환이 순절하였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하루종일 울고 있다가 인력거를 차주(車主)인 김삼령의 집에 가져다주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가 간 종적을 추적하였는데, 이미 그는 경우궁 뒷산의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의 시신은 이미 얼어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역 매천야록 제4권(1905년), 6. 인력거 인부의 순사(殉死) ) 이어서 12월 14일에 전 찬정(前 贊政) 홍만식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데 분개하여 약을 먹고 죽었다.
이에 고종은 조령(詔令)을 내렸다.
"이 재신(宰臣)은 과묵한 자품과 신중하고 성실한 뜻을 지녔는데 시국이 위태로워짐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통분한 마음으로 강개하여 마침내 자살하였으니 매우 애통스럽다.
졸(卒)한 종2품 홍만식의 상(喪)에 장례 비용을 궁내부(宮內府)로 하여금 넉넉히 보내주게 하고, 특별히 종1품 의정부 참정대신(議政府 參政大臣)의 직(職)을 추증하라.
예식원(禮式院)으로 하여금 정려(旌閭)를 내려 주는 은전과 시호를 내리는 은전을 시행하게 하되, 시장(諡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시호(諡號)를 의정(議定)하며, 비서원승(祕書院 丞)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라." (고종실록 1905년 12월 14일 1번째 기사)
이날 의정부의정대신 임시서리 외부대신 임시서리 학부대신(議政府 議政大臣臨時署理 外部大臣臨時署理 學部大臣) 이완용이 아뢰었다.
"11월 17일에 한일협상조약(韓日協商條約)이 이미 성립되었으니,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공사(公使)들을 모두 즉시 소환한다는 내용으로 신칙(申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이러자 고종이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2월 14일 4번째 기사)
학부대신 이완용은 12월 8일에 의정부 의정 대신 임시 서리로 임명되었고, 12월 13일에는 외부대신 임시서리로 임명되어 벼슬이 3개나 되었다.
그런데 고종은 마음속으로는 을사늑약이 무효라고 생각하면서 재외공관 의 철수를 윤허하다니. 이런 고종의 이중성에 어느 것이 진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고종을 혼군(昏君) 내지 암군(暗君)이라고 부르나 보다.
이 날 주한일본공사관은 ‘한국의 재외공관(在外公館) 철수에 따른 한국 외부(外部)의 현지 대책 요구에 대한 훈령 건’을 일본 외무성에 보고했다. 문서번호 : 왕전(往電) 제514호 발신일 : 1905년 12월 14일 오후 8시 30분 발신자 : 임 공사(公使) 수신자 : 계(桂) 외무대신
한국 정부는 오늘 외부대신 대리 이완용의 이름으로써 재독일, 프랑스, 미국, 청나라, 일본의 각 주차공사에게 일한협약(日韓協約)의 결과로서 철수를 명하여 그 기록과 관유재산을 일본공사(東京은 外務省)의 보관으로 옮기고 그리고 봉급과 여비 등은 일본 공사를 거쳐서 신청할 것을 훈령했음.
또 뉴욕, 런던 및 중국 치푸의 각 총영사에게도 동시에 기록 및 관유재산을 일본영사의 보관으로 옮길 것과 경비의 지불을 요하는 것이 있으면 일본영사를 거쳐서 신청할 것을 훈령했음. [별지 7]문서 제목 : 베를린주재 한국공사관에 발신한 전문.
일본과 맺은 조약 조항에 따라 독일 정부에 베를린주재 제국정부 공사관의 철수를 공식적으로 통보했으므로 귀하는 즉시 제국정부 공사관의 공문서와 재산을 일본 공사관의 관리로 이관하고 정식으로 떠날 것을 훈령함.
귀하가 곧 귀하 자신과 직원들의 여행경비에 필요한 금액을 일본 공사관을 통해 제국정부에 알려주면 그 금액은 이미 당연히 지출될 봉급 및 각종 수당과 함께 동일 경로를 통해 귀하에게 전신환으로 송금될 것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통감부 문서, 주한일본공사관 기록 24권, 보호조약 1-3, (200) [한국의 재외공관 철수에 따른 한국 외부(外部)의 현지 대책 요구에 대한 훈령 건]
이렇게 대한제국은 외교권이 없는 식물 국가가 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