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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2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1905년 외교권 박탈, 1906년 통감부 설치, 1907년 군대 해산, 1909년 사법권 상실, 1910년 국권마저 상실
등록날짜 [ 2021년05월16일 17시35분 ]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와 항의가 잇따르자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한 달이 지난 1905년 12월 16일에 의정부 의정대신 임시서리 학부대신 이완용, 참정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 군부 대신 이근택이 을사조약을 조인한 전후 사정을 아뢰는 상소를 올렸다.


특이하게도 상소는 참정대신(국무총리) 박제순보다 의정 대신(부총리) 임시서리 이완용 이름이 먼저이다.  상소문을 읽어보자.

“삼가 생각건대, 신들이 성조(聖朝)에 죄를 짓고 공손히 천토(天討)를 기다린 날도 여러 날이 되었는데, 황상(皇上)께서 특별히 더 관대하게 폐하의 위엄을 늦춘 것은 참으로 하해(河海)와 같은 도량으로 너그럽게 포용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신들이 버젓이 묘당(廟堂 의정부)에 있는 것은 염치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국(時局)을 보건대 어찌할 수 없어서입니다.”
 

조약 체결 시 반대 한 번 제대로 안 했으면서, 시국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변명하다니 정말 파렴치하다.
“신들이 요즘 상소들을 보았는데 거기에서 탄핵(彈劾)하고 논열(論列)한 것들은 신들이 스스로 폄하(貶下)한 것과 크게 다르니 어찌된 일입니까?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네이버지시백과 출처
그들은 국가가 이미 망하고 종사(宗社)가 존재하지 않으며 인민(人民)들은 노예로 되고 강토는 영지(領地)로 되었다고 인정하는데 이렇듯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 저 무리들이 과연 새 조약의 주지(主旨)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이것이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하는 말이니 상대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지만, 국가가 이미 망하고 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철저하게 힘껏 해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은 민영환, 조병세, 이상설 등 상소를 올린 여러 사람들이 새 조약(을사늑약)의 주지(主旨)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올린 상소는 흐리멍덩하게 하는 말이라고 싸잡아 비판한다. 그렇다면 민영환, 조병세 등의 순국은 개죽음이란 말인가? 이런 뻔뻔함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상소는 계속된다. 
“새 조약의 주지(主旨)로 말하면, 독립(獨立)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帝國)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宗社)는 안전하고 황실(皇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독립 국가이고 황실도 그대로이며, 다만 외교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는데 호들갑을 떤다는 투이다.
외교권은 잠시 일본에 맡겼으니, 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궤변 일색이다. 외교권이 전당포에 잠깐 잡혔다가 돈 생기면 도로 찾는 물건이란 말인가?

대한제국은 1905년에 외교권을 빼앗긴 후에 1906년에 통감부 설치, 1907년에 군대 해산, 1909년 사법권 상실, 1910년에는 국권마저 상실했다. 을사오적들은 실상을 심히 왜곡하고 있다. 후안무치하게도 주권이 빼앗긴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상소는  계속된다.
 

“더구나 이것은 오늘 처음으로 이루어진 조약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지난해(1904년)에 이루어진 의정서(議定書)와 협정서(協定書)에 있고 이번 것은 다만 성취된 결과일 뿐입니다.

가령 국내에 진실로 저 무리들처럼 충성스럽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마땅히 그 때에 쟁집(爭執)했어야 했고 쟁집해도 안 되면 들고 일어났어야 했으며, 들고 일어나도 안 되면 죽어버렸어야 했을 것인데 일찍이 이런 의거(義擧)를 한 자를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중대한 문제가 이미 결판난 오늘날에 와서 어떻게 갑자기 후회하면서 스스로 새 조약을 파기하고 옛날의 권리를 만회하겠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일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는 국교 문제에서 감정을 야기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완용 등 오적은 또 궤변을 늘어놓는다. 을사늑약은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와 8월의 한일신협약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는 상소도 없고 의거한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체결과정을 살펴보면 이완용 등의 주장은 가짜 뉴스의 극치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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