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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23)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을사늑약 체결의 전말
등록날짜 [ 2021년05월18일 09시19분 ]

1905년 12월 16일에 이완용 등은 상소문에서 ‘조약 체결의 전말’에 대하여 상세히 기술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2월 16일 3번째 기사)
  
“조약 체결의 전말에 대하여 말한다면, 일본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올 때에 아이들과 어리석은 사람들까지도 모두 중대한 문제가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연 11월 15일에 두 번째로 폐하를 만나본 뒤에 심상치 않은 문제를 제출하니, 폐하께서는 즉시 윤허하지 않으시고 의정부에 맡기셨습니다.


이튿날인 16일에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 대신 민영기, 법부 대신 이하영 및 신 이지용, 권중현, 이완용, 이근택은 대사가 급박하게 청한 것으로 인하여 우관(寓館 이토의 숙소인 손탁호텔)에 가서 모였고, 경리원 경(經理院 卿) 심상훈도 그 자리에 있었으며, 박제순은 하야시 공사의 급박한 요청에 의하여 혼자서 일본공사관에 갔습니다.

그런데 모두 어제 제출한 문제를 가지고 문답을 반복하였으나 신들은 끝내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을 보였습니다. 밤이 되어 파하고 돌아와 폐하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뵙고 응답하였는데 문답한 내용을 자세히 아뢰었고 이어 아뢰기를, ‘내일 또 일본 대사관에 가서 모여야 하는데 만약 그들의 요구가 오늘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라면 신들도 응당 오늘 대답한 것과 같이 물리쳐 버리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물러 나왔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종의 가계도

17일 오전에 신등 8인이 함께 일본 대사관에 모였는데, 이 안건을 가지고 쟁론한 것이 복잡하였습니다.


권중현은 ‘이 문제는 비록 대사가 폐하께 아뢰었고 공사가 외부(外部)에다 통지하였지만 우리들은 아직 외부에서 의정부에 제의한 것을 접수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당장 의결(議決)할 수 없으며 또 중추원의 새 규정이 이미 반포된 만큼 반드시 여론을 널리 수렴해야만 비로소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일본 공사는 언성을 높여 말하기를, ‘귀국(貴國)은 전제 정치인데 어찌하여 입헌정치의 규례를 모방하여 대중의 의견을 수렴합니까? 나는 대황제의 왕권이 무한하여 응당 한 마디 말로써 직접 결정하는 것이지 허다한 모면하려는 법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궁내부 대신에게 전통(電通)을 하여 곧바로 폐하를 만나볼 것을 청하였으니, 여러 대신은 함께 대궐로 나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여러모로 극력 반대하였으나


끝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먼저 의정부 내의 직소(直所)에 와서 기다렸으며, 일본 공사는 관원을 데리고 뒤따라와서 휴게소에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있다가 신들이 입대(入對)하여 폐하께 각기 경위를 진달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폐하께서는 몹시 괴로워하시며 이후의 조처에 대해 여러 번 신중히 하문(下問)하셨으나, 신들은 다만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말로써 대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자 폐하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그렇지만 감정을 가지게 할 수는 없으니 우선 늦추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이에 이완용이 아뢰기를, ‘이 일은 나라의 체통과 관련되는데 폐하의 조정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누가 감히 허락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겠습니까? 다만 군신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와 같으니 품고 있는 생각이 있으면 숨김없이 다 진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사가 찾아온 것은 전적으로 이 때문이며 공사가 와서 기다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안건의 발락(發落)하는 것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군신 간에 서로 묻고 대답하는데 다만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다 밀어치우니, 사체(事體)를 가지고 논한다면 합당하지 않음이 없겠지만 이 또한 형식상 처리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여덟 사람이 아래에서 막아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일본대사가 폐하를 나아가 뵐 것을 굳이 청하는데 만약 폐하의 마음이 오직 한 가지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국사(國事)를 위하여 진실로 천만다행일 것이지만, 만일 너그러운 도량으로 할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부분에 대하여 미리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완용 등이 상소한  ‘조약 체결 전말’은 을사오적에게 유리하게 기술되었으리라 생각되나, 을사늑약 체결 과정을 파악하는 데는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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