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2월 16일, 이완용등의 상소는 계속된다. (고종실록 1905년 12월 16일 3번째 기사) “이때 폐하께서 하교하신 것은 없었으며 여러 대신도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습니다. 이완용이 ‘신이 미리 대책을 강구하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할 수 없이 허용하게 된다면 이 약관(約款) 가운데도 첨삭(添削)하거나 개정(改正)할 만한 매우 중대한 사항이 있으니, 가장 제 때에 잘 헤아려야 할 것이며 결코 그 자리에서 구차스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아뢰니,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이토 히로부미 대사도 말하기를 이번 약관에 대해서 만일 문구를 첨삭하거나 고치려고 하면 응당 협상하는 길이 있을 것이지만, 완전히 거절하려고 하면 이웃나라 간의 좋은 관계를 아마 보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그 약관의 문구를 변통하는 것은 바랄 수도 있을 듯하니 학부대신의 말이 매우 타당하다.’ 하셨습니다. 권중현이 아뢰기를, ‘지금 학부대신이 말한 것은 꼭 허락해 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한 번 질문할 말을 만들어서 여지를 준비하는 데 불과할 뿐입니다.’ 하니,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이런 것은 모두 의사(議事)의 규례이니 구애될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이때 여러 대신이 아뢴 것이 모두 권중현이 아뢴 것과 비슷하였습니다.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그렇다면 이 조약 초고(草稿)는 어디 있으며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을 고치겠는가?’ 하셨습니다.
이하영이 품속에서 일본 대사가 준 조약문을 찾아내어 연석(筵席)에 내놓았습니다. 이완용이 아뢰기를,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이 조약 제3조 통감의 아래에 외교라는 두 글자를 명백히 말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훗날 끝없는 우환거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또 외교권을 도로 찾는 것은 우리나라에 실지 힘의 유무(有無)와 조만(早晩)에 달렸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 기간을 억지로 정할 수 없지만 모호하게 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니,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그렇다. 짐(朕)도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머리의 글 가운데서 「전연 자행(全然自行)」이라는 구절은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권중현이 아뢰기를, ‘신이 외부에서 얻어 본 일본 황제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 약관은 나라의 체통에 크게 관련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것도 응당 따로 한 조목을 만들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하니,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 하셨습니다.
이에 여러 대신 가운데는 폐하의 하교가 지당하다고 하는 사람 이완용의 주장을 찬성하는 사람, 권중현의 주장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모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연석에서 아뢰는 것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우리 여덟 사람이 똑같이 아뢰기를, ‘이상 아뢴 것은 실로 미리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신들이 물러나가 일본 대사를 만나서,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물리쳐야겠습니다.’ 하니,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전에 이미 짐의 뜻을 말하였으니 잘 조처하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한규설과 박제순이 아뢰기를, ‘신들은 한 사람은 수석 대신이고 한 사람은 주임 대신으로서 폐하의 하교를 받들어 따르는 데 불과합니다.’ 하였습니다.”여덟 대신들이 “일본 대사를 만나서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물리치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고종이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전에 이미 짐의 뜻을 말하였으니 잘 조처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교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완전 거절이 아닌 협상을 잘하라는 의미였다.
상소는 이어진다. “우리 8인(人)이 일제히 물러나 나오는데 한규설과 박제순은 폐하의 명을 받들고 도로 들어가서 비밀리에 봉칙(奉勅)하고 잠시 후에 다시 나와 모두 휴게소에 모이니, 일본 공사가 어전(御前)회의에서 어떻게 결정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한규설이 ‘우리 황상 폐하께서는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뜻으로 하교하셨으나, 우리들 8인은 모두 반대하는 뜻으로 복주(覆奏)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공사가 ‘귀국(貴國)은 전제국(專制國)이니 황상 폐하의 대권 (大權)으로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하교가 있었다면 나는 이 조약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알지만 여러 대신은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여 한결같이 군명(君命)을 어기는 것을 주로 삼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러한 대신들은 결코 묘당(廟堂)에 두어서는 안 되며 참정대신과 외부대신은 더욱 체차(遞差)해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한규설이 몸을 일으키면서 말하기를, ‘공사가 이미 이렇게 말한 이상 나는 태연스럽게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하니, 여러 대신이 만류하면서 해명하기를, ‘공사의 한마디 말을 가지고 참정대신이 자리를 피한다면 그것은 사체(事體)에 있어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규설이 다시 제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