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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칼럼>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광양편)

현창사업을 하면 할수록 참으로 기묘(奇妙)할 만큼 극적인 도움을 주는 이상한 일들이 주변에서 생각지도 않게 자주 생성된다!
등록날짜 [ 2021년07월11일 18시19분 ]

종친 모임에 흠모의 추억

그러니까 2014년은 현창사업에 앞 서 이 쪽 저 쪽 수은선생과 관련한 문중의 대소사(大小事)에 거의 참석해 가면서 일가어른들의 마음을 사려고 뛰어다녔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몇 가지만 기록해 보자면 2014년 11월 28 ~ 29일 사평공시제와 강항선생 세미나 설명회관련회의를 갖고 정형택 문화원장을 영광군문화원에서 만나고 29일 정00 박사를 만나 세미나책자와 팜플렛의 후원명칭을 시류(時流)에 맞게 영광내산서원보존회에서 강항문화제후원회(회장 강대욱)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동년 12월 2일 9시 광주 쌍촌동 진주강씨 광주전남종회 사무실에서 강항문화제추진위원회 비영리단체 영광군청 접수의 건으로 강항문화제후원회로 등록을 위해 정관에 임원들의 날인을 받고 영광군종회 강양원 회장을 만나 최종 임대 계약서를 작성했으나 단체 등록이 다시 보류로 결정됨을 의논하였다.
 

이후 동년 12월 29일 영광군청 김00지적계장의 도움으로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로 1950년대 현암 이을호선생이 창립한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를 재창립(創立)하는 계기를 만들고 영광군청 민원실 지적계에 명부등록을 완료하기에 이르렀다.


수은선생 사업 지원 조례안의 추억

이처럼 창립총회를 마치고 불과 2개월도 못 된 2015년 6월 1일 영광군의회, 제211회 임시회 개최, 수은 강항선생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을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 법적 근거가. 관계법령 -「지방 재정법」제 17조 및 제32조의 2-「지방 자치법」제9조 및 제22조)


이렇게 발 빠르게 진행되어져 한편으로 지역민에 대한 지극한 생각은 영광군이 5대 종교 성지의 발상(發想)이 된 원인과 이유를 조금은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낙연 전남지사와 강지원 변호사 일행인, 백인철 탈랜트, 강대의 사무총장,, 영화감독 등
청소년 안전지킴이를 자임하면서 방송에서도 유명한 강지원(매니페스토실천가) 직손과 2015년 6월 10일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면담하기로 결정했다.


백인철 탈랜트, 황풍익 드라마 촬영감독 등은 10일 오후 5시 무렵에 전남도청을 찾았다.


수은강항선생 역사왜곡 광양시 세미나의 추억

나주목사를 지낸 정집(鄭渫)(설)선생은 광양수월정자를 지은 주인공이다. 정집(鄭渫)의 후손인 광주 정씨종친회 임원들을 2015년초부터 만나 조율하기 시작했다.


꽃피는 춘삼월에 만난 이 광주정씨 문중어른은 두세 번 이상 만나 오찬을 했다. 한번 더 오찬을 하자고 해 썩 괜찮은 한정식집으로 기억된다. 이 오찬자리에서 어이없게도 원로 종친 한 분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 대 낮에 약주를 한 잔 권하자 취기가 금새 올라왔는지 넋두리처럼 말한다.


사실 광양수월정기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소. 다만 수은선생보다 송강이 정기문을 썼다는게 우리문중에서는 더 영광되는 길이 아니겠소?? 그러니 이쯤해서 접고 더 이상 의논하지 맙시다!


아마 이러한 오찬 사건이 단초가 되어 광양수월정을 강재원 영광내산서원보존회장과 강대식 직계손 그리고 택시 운송업(2017년 사망)으로 성공했으나 여간해서는 돈 씀씀이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일가와 함께 탐방을 나서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광양수월정만을 의식하고 간 것이 아니라 꿈다락 토요역사학교의 탐방코스로 개발을 위한 여정이기도 했다.


전국 각 시군구청의 문화와 예술의 창달을 위해 그 분야의 전문가인 학예사가 떡하니 앉아있다. 물론 그 분야의 전문가이니 존중받을만하다. 광양시에도 최00학예사가 근무를 하고 있다.


광양시청을 방문 해 최 학예사에게 자료와 증빙서류를 내놓으니 처음에는 이게 왠 떡이냐는식으로 무척 반갑게 맞이하면서 즉각 바로 잡겠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달이 다 지나가도 연락이 없자 재차 방문을 했다.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왜 이렇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금새 답을 발견한다. 단체장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높여 학술세미나의 필요성까지 열거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하는게 있다.우리나라 행정이 조금은 문제가 있는게 어떤 위인에 대한 현창사업의 세미나에는 각 시군구청의 공공건물인 회의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관념적(觀念的)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한 성씨의 인물로 평가된 수은 선생을 위한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주최/주관하는 행사는 결코 시청에서 개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5년 ‘수은강항선생과 광양수월정’학술세미나 

 이에 한국유교대학총연합회(제1대 이사장 강대욱 이하 한유총)에서 발 벗고 나섰다. 전남도의 보조금 사업인 꿈다락 토요역사학교가 명분이 되었다. 한유총이 주최와 주관을 해 마침내 전남 광양시청 1층 대강당에서 ‘수은 강항선생과 광양수월정’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동양문헌학회원들이 결집이 되었고 호남의 유림들이 수은선생에 대해 적극 나서서 200여명의 참석자가 버스 3대를 동원하고 자가용을 이용해 물밀듯 1층 세미나실을 가득찼다.


이날 광주정씨 광주종회장이 개회선언을 하면서 조동래 향토사학자가 토론자로 나서 ‘이 지역에 살면서 제대로 역사를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는데 이렇게 큰 역사왜곡을 바라보며 부끄럽다’며 ‘지역 언론을 통해 바로잡아가겠노라’고 약속했다.


세미나 발제를 한 김덕진 광주교육대교수는 오늘 발제문에 대한 정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학술지에 발표하겠노라고 말하면서 광양 수월정 역사왜곡 세미나의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창사업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학술세미나였다고 충분히 자평한다. 결론적으로 광양수월정으로 수은강항선생이 송강 정철의 허구(虛構)와 가식(假飾)을 물리치고 수월정기문과 수월정 30영을 지었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위의 광양시 공문과 같이 병기(倂記)하겠다는 광양시의 약속이 소극행정으로 머무르고 있어 지난 6월 2일 정명성 강항문화제 대회장과 함께 찾은 광양수월정에 새롭게 설치했다는 안내판의 내용에 대한 문제점을 광양시 최00 학예사을 현장으로 불러들여 강력하게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광양시의 빠른 처리를 위해 담당 공무원의 직무유기와 근무태만을 강조했다. 이렇듯 한 번 역사왜곡이 진행되면 쉽게 수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단적(端的)으로 보여주는 좋은 선례(先例)이다.


이와 더불어 참으로 신기한 현상을 감히 말하고자 한다. 한 인물의 현창사업을 하면서 참으로 기묘(奇妙)할 만큼 극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이상한 일들이 주변에서 자주 발생한다!


조금 동력(動力)을 잃을 때라고 생각하면 꼭 긍정적인 힘을 주는 그 무엇인가가 툭하니 던져주는 듯 생성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여컨대 그렇게 빈번히 거듭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도 실제 체험상황을 갖고 앞으로 틈나는 대로 자주 곁들여 서 언급해 볼까한다.<다음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본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광양수월정기문과 수월정 30영을 소개한다.

1)광양수월정기문
士大夫之進不得有爲於斯世。棄位而巷處者。必謀明山麗水之濱。池館苑囿之樂。一以爲淸閑寂寞之娛。一以抒憂時戀闕之懷。六一翁之於穎上。杜祁國之於睢陽。皆是已。前牧使光州鄭侯。年五十而棄於時。遂求先大夫玉川先生之別業於光陽。距先廬十里許而居之。選勝爲亭。以水月爲名焉。余觀夫南方之山。巍然高者以千數。而白雲爲最奇。南方之水。可行舟者以十數。而蟾江爲最大。以白雲之東麓爲屋山。而以蟾江之上流置屋下。則勝絶有不暇論也。而況天下之三神山。方丈居其一。煙火食人之生世間。聞方丈之名者亦罕矣。其於起居飮食。早夜相對者。何如哉。左嶺右湖。控引島蠻。商舡之所走集。市賈之所輻湊。岳陽朝嵐。鶴洞暮煙。躑躅成山。火雲成峯。霜落而千林紅。氷塞而長河白。千態萬狀。畢集於几席之下。則此水月之所以選勝也。

兵火十年。文物一空。而水月則依舊也。世降俗末。人心不古。而水月則猶前也。市道日巧。一錢俱湧。而水月則無價也。棄枯集菀。門雀可羅。而水月則不遐也。逝者如斯而未嘗往也。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浮光躍金。靜影沈壁。水得月而益淸。月得水而益白。直與侯之胸采。上下乎同符。則此水月之所以得名也。余雖不獲登公之亭。而幸嘗竊誦公之歌。見公之書。已得水月之大槩。而若公之心則余固知之。於是乎書。


 선비와 대부가 세상에 나갔다가 뜻을 펴지 못하고 시골에 와서 사는 사람은 반드시 밝고 수려한 산수가에 연못이 있는 집과 꽃밭이 있는 정원에서 즐겨 삶을 도모하여 한편으로 맑고 한가하고 적막함의 즐김을 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대를 걱정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회포를 풀기도 하나니 육일옹 구양수(欧阳修,1007-1072)가 영상(穎上)에 두기국(杜祁國)이 휴양(休養)하듯 모두 그렇다.

목사를 지낸 광주사람 정후가 나이 오십에 시대에 버림이 되어 드디어 선대부 옥천선생의 별장을 광양으로 찾아가서 선조의 묘소와 십리쯤 떨어져 살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골라 정자를 짓고 수월로 이름을 하였다.


내가 보건데 남쪽의 산이 유일하게 높은 곳이 셀 수없이 많지만 백운산이 가장 기묘하고 특징적이며 남방의 물이 배를 띄울 만 한 곳 여나 문 데를 셀 수 있지만 섬진강이 가장 크다. 백운산의 동쪽 기슭으로 정자의 위를 삼고 섬진강의 상류로 정자의 아래에 두었다면 그 빼어난 경치는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천하의 삼신산에 방장이 그 가운데 하나로 끼어 있음이 연기 불로 밥 지어 먹으며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방장의 이름을 들은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 이곳에서 기거하고 먹고 마시면서 아침저녁으로 상대를 하니 어떠하겠는가? 왼쪽에는 영남이요 오른쪽에는 호남이니 무수한 섬이며 남쪽오랑캐들이 끌려오는 곳으로 장삿배들이 달려와 모이고 장사꾼들이 들어 밀린다.


악양의 아침풍경과 학동의 저녁 오르는 경치 그리고 철쭉이 산을 뒤 덮고 여름날의 구름이 봉오리를 이루며 서리가 내린 뒤에 수많은 나무가 붉은 것이며 얼음이 언 뒤에 긴 강이 하얀 것을 날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 모두 안석과 자리아래 모아드나니 이것이 수월정의 빼어난 경치이다.

전쟁의 화가 10여년을 이끌어 문물이 몽땅 없어졌으나 수월정은 옛 대로요 세상이 내려가 풍속이 떨어져서 인심이 예와 같은데 수월은 전과 같고 시장에 도리는 날로 교묘해져 한 푼이라도 모두 올랐는데 수월은 값이 없고 마른 곳은 버리고 무성한데로 모여들어 문에는 참새그물을 칠만한데도 수월은 멀리하지 않는다. 가기를 저렇듯 하여도 감이 아니요 차고 이그러짐이 저렇듯 하여도 끝내 없어짐이 아니라 빛을 띄우고 금을 반짝이며 고요한 그림자가 벽을 담가놓듯이 물은 달을 얻어서 더욱 하얗다.

이는 곧바로 정 목사의 마음속의 품은 빛과 위아래로 서로 합한 것이니 이것이 수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이다. 내가 비록 공의 정자에 올라가보지 못했으나 다행히 일찍이 선생의 노래를 외어 보았고 선생의 글씨도 보아 이미 수월의 대체적인 것은 알고 있으며 선생의 마음은 내가 본디 알고 있는 바다.. 이에 이기문을 쓰노라!

  2) 수월정 30영
‘수월정 삼십 영(水月亭三十詠)’  강항(姜沆)

<이 정자의 주인은 정접(鄭渫)인데 벼슬은 목사에 이르렀다.<亭主鄭渫 官至牧使>


제1영 동천의 풍월〔大洞風月〕
뜬세상의 공명 찾아 오십년이 지났다.          浮世功名五十年
돌아오니 네 개의 벽뿐 깔고 앉을 방석도 없네. 歸來四壁客無氈
오직 시내 바람 삼나무에 비친 달이           惟有溪風與杉月
취하여도 돈 한 푼 들지 않구려!               取之應不費文錢


제2영 악양의 연하〔岳陽煙霞〕
연하가 깊이 잠긴 악양의 하늘이               煙霞深鎖岳陽天
정말로 홍명이 판별되기 전과 같도다.          正似鴻濛未判前
분명히 방장산의 신선들이                    分明方丈神仙子
고기 잡는 배를 막아놓았으리.                 隔斷漁樵晉客船 


제3영 경수한 천암〔競秀千岩〕
일천 바위 모두가 일천 개의 연꽃모습이니      千岩競學千芙蓉
곧바로 상제의 구중궁궐인가 하네              直入閶門第九重
아마도 와왕의 하늘을 보철한 돌이리라         疑是媧皇補天石
지금껏 조각조각 떨어져 뒹굴고 있으니         至今片片落橫縱


제4영 만벽의 쟁유〔爭流萬壑〕
모든 물 시끄럽고 석천이 열렸는데             衆皺喧豗石扇關
동림의 개인 날에 우레 소리 굉장하다          洞林晴日殷晴雷
그대는 향로의 폭포를 자랑 말게나!            憑君莫詑香爐瀑
만학으로 나누어서 오는 것만 하겠는가?        爭似分從萬壑來


제5영 분지의 춘하〔分地春花〕
한 번 봄을 지내니 또 한 번 새로워진다.        一度韶陽一度新
산가의 생활이 가난하지만 하지 않다.           山家契闊未全貧
단풍잎이 시절을 다투도록 내버려두어라         任他紅紫競時節
정(停)과 대(臺)를 꾸며내어 원 없는 봄이로다.


제6영 방장산의 하운〔方丈夏雲〕
방장산의 구름은 산 위에 산이로다.              方丈山雲山上山
시름에 찬 천첩이 있는 듯 없는듯하고            愁心千疊有無間
용을 따라 다니면서 산농을 달래지 못하고        從龍未慰三農望
하늘에 둥둥 떠서 가고오고 하노라               碧落飄然去又還


제7영 백운산의 추월〔白雲秋月〕
한 조각 보름달 만 리에 떠서                    一片氷輪萬里浮
가을날 백운산 위 흰 구름을 비추네.              白雲山上白雲秋
누구에게 이 달 비춘 곳 물어볼까                 憑誰問着此時月
응당 장안의 명월루도 비췄을 테지                應照長安明月樓


제8영 순암의 동설〔蓴岩冬雪〕
순암에 겨울눈이 쌓이고 뭉쳤으니                 蓴岩冬雪積成堆
목 왕의 중벽 대인가 의심이 든다.                疑是穆王重璧臺
누가 왕공의 학창의를 입고 앉았는가?             誰着王恭鶴氅坐
신선이 낭 풍에서 나오나보다                     神仙初出閬風來


제9영 동령의 아침 해〔東嶺朝暾〕
화륜이 석문의 동에 날아오르니                   火輪飛出石門東
그 빛이 부상을 쏘아 만 리가 붉다                光射扶桑萬里紅
문득 생각하니 동 룡에 누수가 다한 뒤에          却憶銅龍蓮漏盡
구성의 아침 해가 중동을 비추리라                九城初日映重瞳


제10영 서산의 낙조〔西山落照〕
얕은 볕이 흰 구름사이에 뉘엿뉘엿하는데          微陽瀲瀲白雲間
멀리 타오르는 난 산들이 분명한 모습             遠燒分明入亂山
원래 서쪽에 있다고 말하지 마오!                 元在住西君莫道
밤낮으로 가고오고 도는 것이니                   夜朝還往自循環


제11영 조정하여 가는 물〔朝宗逝水〕
백곡이 조난 바가 있어서                         百谷從來有所尊
맑은 강물 밤낮으로 동을 향해 달리네             澄江日夜向東奔
천봉이 조정하는 길을 막지 아니하여              千峯不閉朝宗路
밤낮으로 웅덩이 채워가며 해문(海門)까지 이른다   日夜盈科到海門


제12영 시장에 가는 행인들 〔歸市行人〕
예로부터 섬진을 요진이라 하였는데               從古蟾津號要津
푸른 연잎에 밥을 싸들고 어린처럼 가누나         綠荷包飯似魚鱗
한자리 소란 속에 분명히 기우가 있는 법인데      分明一閧有奇偶
우습다! 구구하게 농단하는 사람들                堪笑區區壟斷人



제13영 평사에 내려앉은 기러기〔平沙落雁〕
평사장 십리가 길고도 긴데                       平沙十里淨漫漫
변방의 날아드는 기러기 점점                     塞雁行行點羽翰
내려와 앉으면 화살이 무서우니                   翔集更妨矰繳苦
도량을 못 찾는다. 슬피 우지 마려무나!            哀鳴莫恨稻粱難

 

제14영 유안비조 꾀꼬리〔柳岸飛鶯〕
양유가 푸르러니 삼월도 저물어간다               楊柳靑靑三月暮
금의 입은 공자가 시인을 부르는 구나             金衣公子喚詩人
생황처럼 우는 내가 필요 하리오 마는             笙簧百囀寧須汝
해마다 가난한사람 버리지 않아 고맙구나!          只愛年年不棄貧 

 

제15영 청피 송아지〔靑坡牧犢〕
이월의 봄바람이 불탄 들에 깃들었으니            二月春風入燒痕
어미 소는 송아지 끌고 떼를 이루었다             㹀牛將犢自成群
언덕에서 풀 뜯고 시내에서 마시니                上坡齧草下溪飮
태묘의 희생소리는 듣기도 싫구나                 太廟犧牲不願聞 

 

제16영 죽림에 까마귀〔竹林棲烏〕
느린 새 돌아옴에 각각이 집이 있고               倦鳥飛還各有棲
위천(渭川)의 천무 죽이 구름까지 닫았네!          渭川千畝與雲齊
서릿바람 솔솔 불고 달빛은 교교한데              霜風獵獵月皎皎
이따금 반야에 깨서 우누나                       驚起時聞半夜啼

 

 제17영 긴 들에 교적〔長郊牧笛〕
소가 잠든 언덕에 풀은 연기와 같고               眠牛隴上草如煙
소먹이는 피리 소리 저녁 하늘에 울린다.           牧笛一聲橫晩天
해마다 강둑의 버들 꺾어 다하고                  年年折盡江頭柳
북치고 피리 부는 소리 정신이 산란하네!           鼓吹傳呼恐疾顚 


제18영 영포의 어가〔遠浦漁歌〕
어디 곳에서 들려오는 한곡족의 어부소리에         一聲何處漁歌傲
산들 바람과 가랑비가 따라 온다                   聲逐斜風細雨過
화당에서 옥패차고 구름까지 울린 노래             畫堂玉佩縈雲響
도롱이 입고 부른 이 노래만 하리오!                爭似蓑翁歌此歌

 

제19영 죽통에 인천〔竹桶引泉〕
산객이 생활하려고 온갖 꾀를 내는데                理生窮百巧
대나무 홈을 파서 샘물을 당겨왔다                  竹竿分引細泉淸
소리가 백보 밖에 울려 구름도 젖었으니             傳聲百步靑雲濕
소갈 병 앓는 마경도 나올 수 있으리라              可起消中病馬卿

 

제20영 수점의 춘〔水砧舂粱〕
청천을 담아서 한줄기 길게 뻗었고                  閘得淸泉一道長
향도를 잘 찧어서 서리처럼 하얗다                  細舂香稻白如霜
삼허가 장군의 배를 져버리지 아니하니              三虛不負將軍腹
침저의 맹광을 괴롭힐 것 없어라                    砧杵無勞老孟光

 

제21영 죽에 끼인 매국〔間竹梅菊〕
노란 국화와 매화가 덕으로 벗이 되어               黃菊梅花德有隣
모년의 생활이 총죽에 의탁했다                     暮年生活托叢筠
어찌 도리와 안색을 다투리오!                      肯將桃李競顏色
얼음 서리 내릴 적에 참모습을 보리라               直待氷霜方見眞

 

제22영 교설하는 송필 〔傲雪松篁〕
꽃은 말라서 향기를 잃고 새도 노래를 그쳤는데      花枯無艶鳥沈歌
쥐죽은 듯 청산에 한기만 많다                      死瓦靑山寒氣多
 오직 푸른 솔과 푸른 대나무를                     惟有靑松兼綠竹
한겨울 깊은 눈인들 어찌 하겠는가?                 大冬深雪奈君何 


제23영 어가 연지(蓮池)에 뜀〔魚躍蓮池〕
창태의 일석지를 파서 만든 연못에                   鑿破蒼苔一席許
맑은 물 몇 섬에 연줄기의 연                        淸泉數斛十莖荷
청광과 운영이 갑자기 부서지니                      天光雲影忽破碎
노는 고기 팔팔 뛰면서 지나가누나!                  知有遊魚潑潑過 

 

제24영 서리 맞은 단풍〔霜酣楓岸〕
청녀가 초안의 단풍을 심히 때려                     靑女偏侵楚岸楓
천림이 하룻밤에 빨갛게 물들었네!                   千林一夜染成紅
누구를 통해 서풍을 타일러                          憑誰說與西風道
함부로 비단 잎 떨구지 말라고 할꼬!                  切莫斜飄錦葉空

 

제25영 남교에 영객〔南橋送客〕
남교에 방초가 무성하게 푸르른데                    南橋芳草綠萋萋
사장머리 술을 잡고 이별하기 아쉬워라               把酒沙頭惜解携
이와 같은 강산에 이와 같은 풍경 있으니             如此江山如此景
그대여 잠깐만 머무르면 어떠한가?                   勸君無惜暫時稽

 

제26영 북리에 초명〔北里招明〕
북리에서 벗을 불러 벗이 자리에 가득하니            北里招朋朋滿座
계우가 아니면 바로 원옹이로다.                     若非溪友卽園翁
주인에게 은근히 말하노니                           殷勤爲報主孟道
집이 가난하여 술 없다 말하지 마오                  莫說家貧新釀空 

 

제27영 용탄에 지탄〔龍灘泛舟〕
연래에 나의 놀음 창주에 붙혔으니                   年來吾道付滄洲
용탄의 여울 위에서 즐거이 노닌다.                  愛向龍灘灘上遊
물속의 어룡들도 백발을 알아보니                    水底魚龍諳白髮
물결이 빈 배를 부술 걱정 아니 한다.                不愁驚浪破虛舟


제28영 귀연의 낚시질(龜淵釣魚)
귀연의 고기가 면남의 어와 같아                     龜淵魚似沔南魚
낚싯대 가져와서 가는 비속에 드리운다.               把釣來投細雨餘
솥에는 삶은 고기 소반에는 회가 있으니               鼎有烹鮮盤有鱠
늙으막에 포식할 대책 무던하여라                     老來謀飽未全疏

 

제29영 송하에 차다림〔松下煎茶〕
소나무 그림자에서 솔방울로 차를 다리니              松子煎茶松影裏
솔뿌리 섥 익고 솔바람소리난다                       松根盤礴聽松風
솔바람은 본시 소나무 가지 위에 있는 것인데          松風本在松枝上
갑자기 선생의 석정 속에 들었도다.                   忽入先生石鼎中 

 

제30영 매변 작주〔梅邊酌酒〕
잔을 들고 노매뿌리로 옮겨 앉으니                    一觴移就老梅根
맑은 향기 술동이를 쳐주기 때문에                    爲是淸香撲酒尊
취한 뒤에 산일이 저문 줄을 몰랐는데                 醉後不知山日暮
얇은 연기 희미한 달빛 황혼이 되었도다!!              淡煙疏月正黃昏<출처 : 수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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