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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칼럼>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무안 화설당 편)

무안군 화설당, 나주목사 박후(朴候)와 교유했던 이 지역 인물의 별장으로 문인들의 교류 도장!!
등록날짜 [ 2021년07월31일 13시28분 ]

항상 역사적 현장을 함께 순회(巡廻)한 강재원 영광내산서원보존회장은 훤칠한 키에 어울리지 않게도 매사에 신중하고 꼼꼼한 편이시다. 선생의 문적(文籍)인 수은집을 비롯해 유물이나 종가의 전통을 토대로 400여 년 전의 활동들을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을 주문했다.


이 모든 유적지 탐방은 가끔 뜻있는 직손들이 나섰다. 강지원 변호사가 함께 하기도 했고 강대식 농산물 도매사업가와 강 익 나자리침대 대표가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지원해 복원 작업하듯 섬세하게 마치 400여년을 뛰어 넘어 옆에서 함께 생활하는 양 리얼리티를 덧입히기로 했다.


무안 화설당은 영광과 고창, 광양과 구례군을 탐방하고서도 2015년도 훨씬 늦은 가을철이었다.

화설당 역시 뚜렷하게 관리인을 두고 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71호로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실정이고 그나마 문화유씨 화설문중에서 관리를 하였다.


그 근처에서 어렵게 유운(柳運, 1580~1643)의 문화 유씨 화설문중 후손을 찾았다. 무안 청계에서 감배농장을 운영하시는 분으로 인심도 후했다. 아낌없이 마실 것을 내놓으며 선조에 대한 문중의 애정을 쏟아낸다.
 

전설같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며 조선시대에 이름난 학자들이 이곳에 내려와 정사를 의논하고 학풍을 세우는 역할을 한 장소임을 강조한다. 그나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분이셨는지 문중에서 화설당 문집을 제작해 만들었는데 주소를 잊지않고 1년후 문집을 보내온 기억에 다시 한 번 화설당문집을 펼쳐보게 되었다.


후손들이 이러한 경외(敬畏)심을 갖기에 화설당의 기억은 지금도 쉽게 가라않지 않는다. 유운(柳運)은 화설당은 스스로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교류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당시 인물 교류 등 자료가 남아있는 정자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 지역의 후학양성과 향토의 유림들의 출입 장소로 화설당을 1610년경에 건립하게 되었다.


화설(花雪)이라는 명칭은 1612년 겨울로 올라가 나주 목사 박동렬(1564-1622)과 수은 강항(1567-1618)이 이곳을 찾아와 한겨울인데도 동백꽃이지지 않고 피어 있어서 화설(花雪)이라 칭하면서 시 1수를 남긴데서 연유한다.


어느 누정(樓亭)에서나 그러하듯 화설당 안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연못 주위에 한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리를 하고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었다가 5년 후인 1967년에 보존가치가 상실하였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고 말았다고 전한다.


여기 화설당에 수은 강항은 화설당기(花雪堂記)를 남겼는데 이후 송시열(1607~1689)이 화설당(花雪堂) 판액을 써 전해 내려온다. 이후 역사의 무게에 의해 화설당(花雪堂)은 1728년에 중수를 하고 이어 1869년에 또 한 번 더 중수(重修)하여 현재 의 모습으로 추정 되어 진다.


화설당은 건축 구성에 있어서 완전한‘一’자형 으로 좌로부터 방과 방 그리고 대청 2칸 순으로 이어져 있고 전·후로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무안 화설당은 1600년대 건립하여 뒤에 개수한 건물로 강학(講學) 교류 공간으로서 중요한 유적지이며 유운(柳運)의 주변과 관련인물 자료 등에 있어서도 유서가 깊은 역사성과 평면구성상의 특징이 나타나 비교연구 할 수 있는 학술성의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참고 문헌 수은집, 위키백과)

화설당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포털

종     목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71호

명     칭 무안 화설당 (務安 花雪堂)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동/ 정면4칸, 511㎡ 지 정 일 2009.03.20

소 재 지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사마리 434-3

소 유 자 문화유씨 화설문중 / 관 리 자 문화유씨 화설문중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포털>


화설당 유적지를 첫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남문화재단이 주최 / 주관한 문화축제사업인 ‘전대미문’이라는 슬로건에 강항 토요역사학교에서도 참여했다. 모든 비영리단체가 참가하여 각 지역의 꿈다락 토요역사학교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귀가하는 길에 무안 화설당을 강항 토요역사학교 학생들에게 보여줄 욕심으로 조금 일찍 서둘러 나섰다. 대형버스로 꾸불꾸불한 농로를 따라 들어와 학생들에게 안내판의 글과 동네를 소개하면서 옛날 선비들이 삶을 오늘에 되살린다.


그들이 광활한 호남평야를 바라보며 민심을 챙기고 국가를 근심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다음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수려한 선생의 화설당기문을 게재한다.
]

화설당(花雪堂)의 기문(화설당기)
화설당(花雪堂)에 이름난 꽃과 신령스런 풀이 모두 있는데 그것들을 쓰지 않은 것은 눈속에 꽃이 피는 것을 중하게 여긴 것이다. 무릇 꽃이 피기를 언제나 봄철에 하고 눈이 내리기는 언제나 한겨울에 한다. 그런데 봄철에 피어야 할 꽃이 한겨울의 눈 속에 피었으니 그래서 이 화설당(花雪堂)이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이다.


이름을 지은 이는 누구냐 하면은 면주(綿州 : 務安의 옛 이름)의 박후(朴候)요, 주인은 누구냐 하면은 금성(綿城)의 유자(柳子)이다.박후(朴候)가 신해(辛亥 : 1611) 임자(壬子 : 1612)의 겨울에 삼향(三鄕)에 화살감을 채취하기를 두 번을 하였는데 오가는 길에 유자의 당을 찾기를 네 번이나 했다.
 
그 맨 나중에 내가 지나는 사람으로서 박후(朴候)를 따라가 당에 올라보니 매화 두어 가지가 이미 하얗게 피어 있고, 산 차 한 나무가 이미 빨갛게 피어 있어 산 차는 아우가 되고 매화는 형이 되어 색은 다르되 같은 향기를 풍기며 서로 비치고 있는 모습이 황홀하여 때가 겨울인지 겨울의 윤달인지 윤달의 보름 전날 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박후(朴候)가 유자더러 말하기를 [그대의 당에 이름이 없으니 화설(花雪)이라고 하지 않겠나?]하였다. 유자가 그 뜻을 묻자 박후(朴候)가 하는 말이 [모든 물건이 드물게 있는 것이 귀중하니 사람도 드물게 보면 귀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이삼월의 사이에 희고 붉고 한 것은 보통 화초들이 다 그러하니 그것을 어찌 족히 이러 쿵 저러 쿵 하겠는가. 오직 천지가 막히고 섣달이 얼어붙어 청산의 빛도 달라지고 물도 얼음이 얼어 수 만 가지 나무가 부러질 듯하고 쌓인 눈이 한결 하얀 그런 때에 두가지 화초만이 능히 겨울 속에서 혼이 되살아나서 위엄 있고 씩씩함이 능히 굽히지 못하고 미친 듯 날아드는 벌과 즐거운 듯 찾아드는 나비들이 능히 탐하지 못하여 오직 눈속에 핀 꽃(雪花)의 六出 : 눈은 모두 六角임) 한 것으로 더불어 서로 피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것이 드물게 보는 것이며 드물게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래서 내가 들추어서 이름을 정하는 것일세.


옛날 진나라 때의 도연명(陶淵明)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으니 그것은 서리를 무시하기 때문이었다. 서리 속에 꽃이 피는 것도 오히려 귀엽거든 하물며 눈속에 꽃이 핌이랴.


당나라 때에 왕우승王右承은 袁安의 臥雪圖를 그려주면서 눈 속의 芭蕉를 만들었는데 알 만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했다. 무릇 파초를 그리면서 무턱대고 눈을 그려놔도 오히려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향기로 겨울의 눈을 무릅씀이랴.


그리고 내가 또 들으니 옛 사람이 堂을 이름 짓는데 蘭雪이라고 한 분도 있으니 무릇 소나무가 눈을 얻은 것이나 난초에 눈이 뿌려진 것은 보통일이라.堂과 軒은 실지로 있지 아니하면서도 빌려서 사치를 하는 수가 있거든 하물며 그대의 당은 실지로 눈속에 꽃이 피는 것이 있음이랴] 하였다.


柳子가 [좋습니다] 하자, 박후(朴候)가 나에게 기문을 쓰라고 명하므로 이렇게 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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