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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해방정국 3년 (4)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미군정의 남한 통치
등록날짜 [ 2021년09월04일 21시04분 ]

1945년 9월 8일 오전에 미국 제24군단 사령관 하지 육군 중장이 인천항에 입항했다. 입항 하루 전인 9월 7일에 태평양 방면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포고령 제1호와 제2호를 발표했다. 포고령 제1호는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의 지위로 한반도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고 했고, 포고령 2호는 미국에 반대하는 사람은 용서 없이 사형이나 그 밖의 형벌에 처한다고 했다.

9월 9일에 미군은 서울로 진주하여 군정을 선포했다. 이 날 오후 4시 30분 조선총독부 정문에 걸린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 아베 노부유키 총독은 조선 통치를 미국에게 이양하는 항복 조인 문서에 서명하였다.

9월 12일에 하지는 미 육군소장 아놀드를 군정장관, 헌병사령관 육군 준장 로렌섬을 경찰책임자, 육군 소장 키량프를 서울시장에 임명하였다.

9월 17일에 미군정은 ‘정당은 오라’는 성명서를 통해 정당 신고제를 실시했다. 1개 월 사이 40-50개의 정당과 정치단체가 생겼고, 11월 1일 현재 미군정청에 등록된 정당과 정치단체가 무려 205개에 이르렀다. 이러자 ‘개나 소나 다 정당을 만든다.’는 조롱 섞인 말이 유행했고, 미국인으로 하여금 수많은 냉소적 논평을 낳게 했다.

하지 중장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보낸 1945년 12월 16일 자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인들은 이제까지 내가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정치적인 사람들이다. 움직임 하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정치적으로 풀이되고 정치적으로 평가된다.”


(하지 사령관은 태평양 전쟁 때는 ‘태평양의 패튼’으로 평판을 얻었는데 극히 보수적이고 매사에 엄격하며 정치적 감각도 없었다. 그리고 청교도적인 자세로 열심히 일하고 소박하게 살았다.)

한 미군정 관리는 “한국인들은 식사하려고 두 세 명만 모이면 정당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두 사람이 모이면 3개의 정당을 만든다는 말도 나왔다. 두 사람이 각각 정당을 하나씩 만들고, 두 사람이 합쳐 하나의 정당을 만든다는 식으로 말이다.  

 
10월 10일에 아놀드 미군정 장관은 신문 기자회견 석상에서 성명을 발표하였다.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에는 오직 한 정부가 있을 뿐이다. 이 정부는 맥아더 원수의 포고와 하지 중장의 정령과 아놀드 소장의 행정령에 의해 정당히 수립된 것이다.”

이어 아놀드는 ‘조선인민공화국을 꼭두각시들의 연극이요 일종의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면서, 인공지도자들은 어리석고 타락한 사람들로서 ‘자신들이 한국의 합법적 정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바보스럽다’고 조롱했다.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1권, p 91-95)

더욱이나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을 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적 그룹이며 소비에트 정치운동과도 모종의 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하지 중장이 맥아더 원수에게 보낸 1945년 11월 25일의 보고서)

이런 와중에 10월 16일에 이승만이 미국에서 귀국했고, 11월 23일에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도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였다.

당시 남한에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정치활동을 하였다. 우익세력으로 송진우와 김성수가 중심이 된 한국 민주당과 이승만 중심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김구 중심의 한국독립당이 있었고, 중도 세력으로는 우익적인 안재홍의 국민당과 김규식 중심의 민족자주연맹, 좌익적인 여운형 중심의 조선인민당과 백남운이 중심이 된 남조선 신민당이 있었다. 좌익 세력으로는 9월 11일에 결성된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이 활동하고 있었다.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은 8월 20일의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8월 테제)」란 글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혁명을 꿈꾸었다. 


“2. 조선 혁명의 현 단계

금일 조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계단을 걸어가고 있나니 민족적 완전 독립과 토지문제의 혁명이 가장 주요하고 중심되는 과업으로 서 있다. ... 반동적 민족부르주아지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 한 한국 민주당은 지주와 자본계급의 이익을 대표한 반동적 정당이다. ... 


  5. 혁명이 높은 단계로 전환하는 문제  

조선의 혁명이 그 발전에 따라서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높은 단계인 푸로레타리아 혁명에로 전환하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이론 문제인 것이다. ... 조선의 객관적 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무조건하고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제 과업의 수행을 강경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요, 조선에서는 푸로레타리아 혁명의 단계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힘있게 주장한다. ... 이렇게 이 문제를 옳게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만이 가장 혁명적인 것이요, 가장 옳은 정치노선이 되는 것이다.(류승렬 지음,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 현대, 솔출판사, 2003, p 254-255) 


  조선 혁명 만세. 조선인민공화국 만세, 조선 공산당 만세, 중국 혁명 만세, 만국 푸로레타리아트의 조국 쎄쎄르(소련) 만세, 세계 혁명운동의 수령 스탈린 동무 만세 (류승렬 지음,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 현대, 솔출판사, 2003, p 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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