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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1895년부터 1904년까지 10년간의 한국’ 단적 표현
등록날짜 [ 2021년10월11일 09시14분 ]

‘잃어버린 10년’. 이는 ‘10년간의 한국’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국은 이 시기에 독립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고종 정권의 부패와 무능으로 일제의 먹이가 되었다. 

 

그러면 1895년의 한반도 정세부터 살펴보자. 1894년 2월 10일(음력 1월 10일)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해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들이 봉기했다.

1895년부터 1904년까지 연보
고종이 친정한 1874년부터 1894년까지 20년간 백성을 수탈한 민씨 정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5월 31일에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놀란 고종과 민왕후는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한 ‘외세의존병’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임금과 왕비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청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기 백성을 진압하려 했으니 이게 제정신인가?”

 

6월 초에 청군이 아산에 도착했고 천진조약에 의거하여 일본군도 인천에 들어왔다. 6월 11일에 동학농민군은 전라감사와 화약(和約)한 후에 해산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물러나지 않고 7월 23일에 경복궁을 점령했고, 7월 25일에 일본 해군은 아산만 풍도 근처에서 청나라 군인이 탄 배를 기습했다. 일본은  8월 1일에 정식으로 선전포고 했다.

1895년 2월에 청나라 북양함대마저 궤멸당하자 이홍장은 일본으로 달려갔다. 이홍장은 피습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4월 17일에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다.
 

1.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승인한다. 2. 요동반도·대만·팽호 열도를 할양한다. 3. 2억 냥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한다.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확인했다. 이는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 포기였지, 조선이 독립국임을 국제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그런데 4월 23일에 러시아·독일·프랑스 3국이 일본의 요동반도 점유를 반대하고 나왔다. 4월 29일에 일본은 별수 없이 요동반도 반환을 결정했다.

 

이러자 고종과 민왕후(1851∽1895, 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는 친러로 돌아섰고 위협을 느낀 일본은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에 민왕후를 경복궁 건천궁에서 시해했다.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연금 상태였다.


고종은 10월 11일(양력 11월 27일)에 미국 공사관으로 파천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고(춘생문 사건), 1896년 양력 2월 11일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이었다. 이 시기의 키워드는 ‘독립’이었다.


1895년 12월 26일에 서재필(1864~1951)이 11년 만에 미국에서 귀국했다. 중추원 고문으로 임명된 미국 국적의 서재필은 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고종의 밀사인 헐버트의 평가를 읽어보자.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외국어 신문이 창간됐다. 그 신문의 이름은 The Independent였으며 일부는 한글로 인쇄됐다. 처음부터 그 신문은 한인들 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독립협회가 조직되도록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됐다.” (헐버트 지음·신복룡 역주, 대한제국 멸망사, p189, 192)


독립신문은 발행 초기에 정부의 시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가의 자주독립을 역설하며 국민계몽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고종과 정동파 내각 그리고 서재필은 모처럼 밀월관계였다.

7월 2일에는 독립협회가 창립되었고, 11월 21일에 독립협회는 서대문에 있는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 정초식을 거행했다.

 

한편 375일간 아관파천(俄館播遷)한 고종은 열강들에게 각종 이권을 빼앗긴 후, 1897년 2월 20일 영국·미국·러시아 공관들이 근처에 있는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1897년 8월 16일에 고종은 연호를 광무(光武)로 짓고, 10월 12일에는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했다. 조선은 중국과 대등한 자격을 갖춘 독립국가가 된 것이다. 

 

이로부터 한 달이 지난 11월 20일에 독립문 준공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서재필은 “우리는 이제부터 옛날 종노릇 하던 표적을 없애 버리고 정말 실질적 독립을 소원한다는 표시로 이 독립문을 세우는 것이니, 우리 국민들은 이 점을 잘 생각하고 우리나라 독립·자주를 위하여 더욱 분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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