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12월05일su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김세곤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전제군주 고종 황제
등록날짜 [ 2021년10월12일 19시34분 ]

1897년 10월 12일에 대한제국이 탄생했다. 고종은 황제가 되었다. 대한제국 탄생 이후 가장 먼저 치른 국가적 행사는 11월 21일에 있었던 명성황후 국장(國葬)이었다. 장례는 왕후가 1895년 10월 8일에 경복궁에서 시해된 지 2년 1개월 후에 이루어졌다. 장지는 서울 청량리 밖 홍릉이었다.

 

 국장(國葬)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례비는 쌀로는 44,300여 섬 규모로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10억 원에 달했다.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3, p 106)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고깃값만 해도 6만 냥이 들고 상여꾼에게 호궤한 비용이 6만 2천여 냥, 상여꾼은 7천 명, 등룡(燈籠)은 관례로 준비한 이외에 추가로 1,100쌍을 더 진열하였으며, 다른 비용도 이와 상당하여 다 기록할 수가 없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고종은 1898년 12월 25일에 독립협회를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 해산시켰다. 근대 국민국가로 향한 발걸음이 끊긴 순간이었다. 1899년 8월 17일에 고종은 정치체제는 ‘만세불변할 전제정치’이고 황제권은 ‘신성불가침한 권력’임을 천명한 ‘대한국(大韓國) 국제(國制)’를 반포했다.

 

‘대한국 국제’의 핵심 내용은 육해군의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관리임면권, 조약 체결권 등 주요 권한을 모두 황제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황제의 권한을 손상시키는 자는 신민(臣民)의 도리를 잃은 자”로 규정하여 복종만 강요했다. 

 

이윽고 고종은 황제권 강화를 위해 재정권과 군권(軍權), 인사권을 무소불위로 휘둘렀다. 1898년 이후에 고종은 궁내부를 대폭 확대했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관원이 163명이던 것이 1903년 말에는 470여 명으로 급증했고, 내장원(內藏院), 예식원, 철도원, 통신원 등 여러 기관이 신설됐다.  

 

이들 신설기구는 기존의 탁지부, 외부, 농상공부 등이 관장했던 재원이나 업무를 가져갔다. 탁지부가 관장하던 화폐주조권, 홍삼 전매권, 역둔토 소작료 징수권, 상업세·어세 · 염세 등 허다한 재원들이 내장원으로 이관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부 재정은 극도로 궁핍해졌다.


심지어 탁지부는 관원 봉급 재원도 부족하여 결세를 담보로 내장원으로부터 대규모  재정자금을 차입하기도 했다. 이후 내장원은 탁지부 대출금 환수를 위해 각 지방에 봉세관을 파견하여 결세를 직접 징수했는데, 백성들에 대한 수탈은 원성(怨聲)의 표적이 되었다.


심지어 1901년에 일어난 ‘제주농민항쟁(신축민란, 이재수의 난으로도 불림)은 봉세관이 과중한 과세를 강압적으로 징수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더구나 1900년 이후에 내장원으로 이관된 전환국은 황제의 의향에 맞춰 백동화를 대량 주조하여 ’황제의 전환국‘이 되었다.


백동화 대량발행은 물가를 폭등시켜 1904년의 물가는 1894년보다 3-5배 치솟았다. 또한 고종은 예식원을 신설하여 외교 업무를 맡김으로써 외교 업무도 외부와 예식원으로 이원화시켰다. 농상공부 산하 기관이었던 전보사,우체사, 철도사 및 광산 관리기능도 궁내부에 신설된 통신원, 철도원, 광학국으로 이관되었다. 

 

아울러 고종은 군권을 직접 장악했다. 고종은 1899년 6월에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를 겸임하고 황제를 호위하는 부대인 시위대(侍衛隊)와 지방 진위대(鎭衛隊)를 증강해 배치했다. 한편 군부 예산은 지나치게 많았다. 1901년에는 정부 예산 중 44.8%에 이르렀고 1904년에 이르기까지 40%에 달했다. 

 

고종은 인사권도 마구 휘둘렀다. ‘회전문 인사’를 자주 한 것이다. 1899년에 ‘대한국 국제’를 선포한 이후부터 1907년까지 군부대신의 임용기간은 길게는 14개월, 짧게는 2일이었다.


이들은 9년 동안 34명이 교체됨으로써 재직기간은 평균 96.6일이었다. (장영숙 지음, 고종의 인사정책과 리더십, 2020, p 338)  이렇게 고종 황제는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했던 루이 14세처럼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였다.

올려 0 내려 0
김세곤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4)
<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3)
<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1)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3) (2021-10-13 08:45:03)
<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1) (2021-10-11 09:14:58)
영광 아름답게그린배,‘2021년 ...
‘나주로컬푸드 소비자 서포터...
이동승 광주공업고 교감, ‘대...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원회 개...
전남도, AI 맞춤 방역 강화 대...
<정의당 전남도당 논평>...
2021년 광주시 우수중소기업인 ...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