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12월05일su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강대의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幼成若天性賦 편)

태어남이 완전함으로 온전한 일단(一段)의 천리(天理)로서, 자라난 人慾(인욕)이 아직은 깨끗함으로 그 참 인성(人性)이 하늘까지 이룸.)
등록날짜 [ 2021년10월15일 15시32분 ]

# 유성약 천성부(幼成若天性賦)

<어려서 가진 마음, 즉 태어남이 완전함으로 온전한 일단(一段)의 천리(天理)로서, 자라난 人慾(인욕)이 아직은 깨끗함으로 그 참 인성(人性)이 하늘까지 이룸.>라는 뜻으로 이 글은 수은강항선생이 생전에 가장 실천적이며 정신적인 축을 이룬 좌우명으로 선비로서 오롯이 생활의 덕목으로 삼고 매일같이 실천하면서 삶을 살았다.

 

실로 수은 선생은 어릴 적부터 천재성에 대한 그 진가를 3세에 백형 저어당 해로부터 글을 배우고 나서 익히면서 주변이 탄복할 정도로 발휘한다. 인생의 좌표라고 할 유성약 천성부(幼成若天性賦)를 9세에 지었으니 5세 - 9세만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5세에 각도만리 심교각(脚到萬里 心敎脚, 다리가 만 리(里)를 가지만 이는 마음이 다리를 시킨 것이다)’을 칠언시(七言詩)를 지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6세 무렵이 안 나타나는데 아마도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공부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짐작해 본다.


그도 그럴 것이 7세 때에 책장수와 관련한 맹자정 일화는 진주강씨 족보와 세보에 8세 강목촌 일화까지 기록이 함께 기록되어 있으니 그러하고 강항도 사서(四書)중의 백미인 맹자 1질을 읽고 싶어 책장수를 손꼽아 기다린 이유도 충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8세에 그 당시 어렵기로 정평(定評)이 난 중국역사고서인 통감강목(通鑑綱目)을 하룻밤사이에 통달했다고 전하니 대장부로서 깊이있게 알아야 하는 학문의 세계는 이미 이 시절에 다 이룬 천재소년이었다고 본다.


오로지 습득한 지식에 의한 응용이 강항에게는 중요했으리라. 그 응용학이 실생활에서 펼쳐질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자 유성약 천성부(幼成若天性賦)를 9세에 지어 어린 선비로서 자세와 향후 학자로서의 실천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 풍국묘 벽서사건

그런 반면에 1598년 왜국에 피로(被擄)되어 2년차에서 수은 선생의 가장 크게 분기탱천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수은 선생이 적개심을 갖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분노(忿怒)하며 울분(鬱憤)을 마구 퍼 부었던 사건이 왜승(倭僧) 남화(南化)가 저지른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죽고 나서 황금전의 어천가 사건으로 이 되먹지도 않은 글을 북북 그어버리고 쓴 유명한 벽서사건(壁書事件)일 것이다.

 

당시 수은 강항은 탈출을 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슴지 않고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를 칭해 "왜적의 괴수 풍신수길이 죽었다. 시체를 북쪽 교외에 묻고 그 위에 황금으로 장식한 전각을 지었다.“고 기록하였다.
 


왜의 승려 남화는 큰 글씨로 풍신수길의 황금전 무덤에 이렇게 썼다. 

 '대명 일본 천지 온 세상에 이름 떨친 호걸이 났도다. 태평한 길을 열었으니 그의 덕이 바다같이 넓고 산같이 높아라.

 

 이에 강항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는 그것을 보고 격분하여 붓으로 온통 먹칠해 버리고 그 옆에 이렇게 썼다.”고 전한다.

 

 '한평생 경영한 게 한 줌 흙 된단 말인가. 열 층의 황금 전당 부질없이 높구나. 탄알만한 네 땅 지금 남의 손에 갔느니라. 무슨 일로 청구 땅에 당돌히도 대들었나?' <수은집>


그것도 탈출을 감행하면서도 적괴(敵魁)의 우두머리가 죽은 그 풍국(豊國)묘의 황금전에 과감하게 벽서로 그 죄를 묻는 행동은 누가봐도 혀를 내둘릴 정도의 대범하고 거침없는 기상이요, 대단히 큰 역사적 사건이다. 선비의 자세와 정신으로서 기꺼이 할 일은 하고야 만다는 대단한 결심의 작용되었다고 밖에 더 이상 말로 형용할 수 없다.

 

# 풍국묘의 벽서사건을 못 믿는 일문학과 교수

어느 00대학교 일문학과 교수는 이러한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마 그 이후로 꾸며낸 이야기 즉, 픽션이거나 거짓으로 꾸며진 사건이라 말하면서 그 당시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도저히 그러한 사건을 저지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에 더 어이가 없는 건 일찍이 그가 일본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학위를 받아서 더 그쪽 문화에 빠져 늪에서 못나오는 꼴이 되고 있다는 한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기가 거북했으나 책벌레로 알고 있기에 진실의 역사를 아는 순간 앞장서서 현창(顯彰)에 나서지 않을까 싶어 꾹꾹 눌러 담고 있다.


사실 일본은 교묘하게도 해방이후부터 우리나라 유명대학에 친일적(親日的)인 연구재단을 만들어 00연구소로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어 자생적으로 생겨난 친일파에 대한 정리가 참으로 쉽지만은 않다.

 

# 벽서 사건을 안 순수좌

다시 풍국묘 벽서사건으로 돌아가서 이 사건이 발생하자 후시미성에 있던 순수좌도 깜짝 놀라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선다. 수은 선생을 찾아와 제발 자중(藉重)해야지만 꿈에도 그리던 고국산천으로 귀국해 갈 수 있음을 애원하듯 간청하였다는 기록이 등원성와 문집에도 남아 있으며 수은집 섭란사적의 기록에도 전해지고 있다.


수은집의 벽서사건으로 인해 순수좌와 수은선생이 그 당시 나눈 대화 내용은 이러하다. “그 필서(벽서) 사건이 있고 난 후 순수좌가 내게 오더니 '요전에 풍신수길의 무덤에 쓰여 있는 글을 보았는데 선생의 글씨더군요! 왜 그리도 자중하지 못 하십니까' 하였다.


그러나 그런 순수좌를 향해 냉정하게 필담을 통해 ‘나는 이미 이곳에 끌려오기 전부터 죽으려고 했고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당당하고 의연한 선비의 기상인가?!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조선의 선비의 자세요, 수은 선생이 항상 품고 있었던 선비정신이었다.
 


# (幼成若天性賦)원문해석글 [9세에 지음]

 어려서 익혀 이룩되면 천성과 같이 된다는 부 : 기왕(旣往)에 내가 덕을 기르려고 뜻을 두었음이여, 어려서 바르게 길러옴이 으뜸이로다. 만약 發한 뒤에 금한다면야, 거부하여 이길 수 없는 걸 어찌하리오. 그래서 어려서 이룩되어야 군자가 되는 것이니,


천성(天性)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세상에)聖人이 다시 나와도 이 말을 바꾸지 않을지니, 전훈前訓이 분명함을 탄식하노라. 오직 횡목(橫目 : 사람의 눈이 가로로 됐음) 이 만물에서 가장 신령함이여! 밝은 天命을 받았도다. 4단(四端 : 惻隱 · 善惡 · 辭讓 · 是非)이 애연(藹然)하게 모두 갖추었음이여, 느낀 바를 따라서 곧 응한다.


그러나 기품이 淸濁이 있음이여, 物慾이 나의 병이 된다. 오래가면 더욱 그 진실을 잃음이여, 필경에는 양심을 잃는도다. 오직 小子는 純一하고 未發함이여, 思慮가 정해진 바가 없도다. 어버이를 사랑할 줄을 모른 이가 없고 어른을 공경할 줄을 모른 이가 없다.


그 처음에 태어남이 완전함이여, 外誘의 해침이 없어서, 온전한 一段의 天理로서, 자라난 人慾이 아직은 깨끗하다. 수다한 말이 어찌 밖에서 들어오며 즐기고 좋아함이 어찌 심경에서 생기겠는가?


마치 물결치지 않는 물과도 같고 마치 먼지 끼지 않은 거울과도 같도다. 그 養을 얻으면 자라나지 않은 것이 없나니 이로 인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 밥 먹을 줄 알고 말할 줄 알 때부터 가르쳐서 하여금 훈도하게 하고 涵泳하게 해야 한다.


격언과 至論을 날마다 일러주어 하여금 배에 차게 하고 귀에 넘치게 해야 한다. 그 뿌리를 북돋고 그 가지를 펴게 함이여, 잠들어 버리기 전에 깨워야 한다. 仁 으로 적시고 의로 연마함이여 하여금 어리석음을 벗겨내고 재주를 드러나게 해야 한다. 날이 오래가고 달이 가면은 마침내 本領이 서게 된다.


습관이 지혜와 함께 자라남이여 덕이 날로 높아지고 業이 더욱 盛해진다. 이러면 性대로 한분(生而知之배우지 않아도 나면서부터 앎.) 곧 聖人(성인)을 이룸과 무엇이 다르리오. 그 결과는 하나가 된다. 전에도 부족함이 아니(아닌 것이니)어니 이제 어찌 많은 것인가.


넓고 넓은 하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인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것 百體가 그令을 따르는 것이라 어린 송아지의 뿔은 방비함이여 공효는 배가 되지만은 적도다. 만약 養을 잃으면 무엇이나 소멸되는 것 마치 길에 풀이 묵듯함을 어찌하리오. 조금만치라도 법도를 따르지 아니하면, 날로 曲逕으로 달려만 가게 된다.


저 이목구비며 손발의 動靜이 다투어 틈을 비집고 뛰어 들어 모든 욕심이 뻗히게 된다. 필경에는 짐승이 되고 새가 됨이여! 애초에다 비하면 전혀 딴판이 된다. 아! 우리 黨의 小子여, 어찌 때에 미쳐 猛省하지 않으리오. 가생(賈生 : 賈誼)의 명언을 외우고 정완(訂頑 : 張橫渠의 西銘)을 읊어 스스로 깨우노라.

 

굳이 뜻의 설명이 필요 없는 글로 아주 쉽게 다가오는 내용이다. 어려서 타고난 인성에 입각해 하신 말씀을 거듭 음미하자면 “그 처음에 태어남이 완전함이여, 외유(外誘)의 해침이 없어서, 온전한 一段의 天理로서, 자라난 人慾이 아직은 깨끗하다. 수다한 말이 어찌 밖에서 들어오며 즐기고 좋아함이 어찌 심경에서 생기겠는가?”로 시작되는 글이자 시종일관으로 살아가야함의 이정표를 찍어 정해 주는 클로징 어구(語句)로 너무도 흡족스럽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모두 유성약 천성부(幼成若天性賦)로 주문을 걸 듯 암송하면서 착하게 살자!!

올려 0 내려 0
강대의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대마도주 답서 편)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佛甲寺重修勸文 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대마도주 답서 편) (2021-10-19 10:12:59)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佛甲寺重修勸文 편) (2021-10-11 20:33:47)
영광 아름답게그린배,‘2021년 ...
‘나주로컬푸드 소비자 서포터...
이동승 광주공업고 교감, ‘대...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원회 개...
전남도, AI 맞춤 방역 강화 대...
<정의당 전남도당 논평>...
2021년 광주시 우수중소기업인 ...
현재접속자